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일본 출장에서 귀국한 뒤 긴급 사장단 회의를 주재하고, 사태 장기화에 대비한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 마련을 주문했다. 일본 현지 상황을 점검한 결과 이번 사태가 예상보다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위기에 선제 대응하자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출장 과정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대상인 핵심 소재 물량도 일부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14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지난 13일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최고경영진을 소집해 회의를 열고, 컨틴전시 플랜 마련 방안을 논의했다.
이 부회장은 12일 밤 5박 6일간의 일본 출장에서 귀국한 후 다음 날 곧바로 회의를 열었다. 그만큼 이번 상황이 긴박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회의에는 김기남 DS부문장 부회장과 진교영 메모리사업부장(사장), 강인엽 시스템LSI사업부장(사장), 이동훈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등이 참석했다. 회의에서는 이 부회장의 일본 출장 결과를 공유하고,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소재 수급 현황과 전체 사업에 미치는 영향, 향후 대응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 부회장은 경영진에게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위기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컨틴전시 플랜을 마련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이 선언한대로 조만간 우리나라를 안보상 우대국인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 전략물자 전 품목에 대한 수출 절차가 까다로워진다. 이럴 경우 1112개에 이르는 품목이 수출규제 영향을 받으면서, 국내 피해가 부품 산업을 넘어 전 산업으로 번진다. 삼성전자 역시 현재는 DS 부문만 영향을 받지만, 향후에는 IT·모바일(IM) 부문과 소비자가전(CE) 부문까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부회장은 또 단기 현안 대처에 급급하지 말고, 글로벌 경영환경 변화의 큰 흐름을 파악하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는 체제 마련 중요성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부품을 넘어 세트 등 다른 제품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에 대한 대비도 당부한 것으로 보인다.
재계는 삼성전자가 핵심 소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중국·대만·러시아 등으로 거래선을 다변화하는데 속도를 내고, 국내 소재산업 육성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출장에서는 소재 긴급 물량 확보라는 성과도 있었다. 이 부회장은 7일부터 12일까지 일본에 머물면서 대형은행, 현지 기업 관계자들과 만나 해당 소재 조달 방안을 논의했다. 이를 통해 수출규제 대상인 핵심 소재 3종 물량 일부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번에 확보한 물량이 얼마나 되는지, 어떤 경로로 확보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업계는 당장 심각한 생산차질을 피할 수 있는 정도만 확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일본 출장을 다녀오면서 일부 소재 물량을 확보했다”면서 “다만 확보한 물량은 급한 불을 끄는 수준으로 근본 사태 해결을 위해서는 앞으로도 지속 노력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이 부회장이 조만간 정부 관계자들과 만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출장으로 인해 청와대 정책간담회에 불참한 만큼 일본 현지 상황을 전달하고, 대체 공급망 확보와 향후 대책 마련 등을 논의하기 위해 만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권건호 전자산업 전문기자 wingh1@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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