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한-일 전은 전 국민의 관심사다. 자존심이 걸려 있는 국가 중대사이기 때문이다. 승리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지면 눈물을 흘리면서 대국민 사과를 한다. 국가대표팀 역대 전적도 78전 41승 23무 14패로 우리가 우위에 있다. 인프라나 규모 면에서 월등한 차이가 있음에도 이와 같은 성적을 거둔 배경에는 강한 호승심이 원동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는 축구와 다르다. 최근 우리나라 경제, 특히 이번 한-일 갈등의 원인이 된 소재부품 산업의 경쟁력을 비교하면 실상은 처참하다. 지난해 대 일본 무역 적자 240억달러 가운데 151억달러(62.9%)가 소재·부품에서 발생했다. 수치로 판명된 경쟁력 차이다. 감성이나 정신력이 아닌 철저한 경제 논리가 적용된다.
이번 한-일 외교 분쟁으로 촉발된 수출 규제는 우리 부품소재 산업 구조의 약점을 제대로 노렸다. 알고 있어도 막지 못했을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대외 의존도를 완화하고 경쟁력을 제고하겠다며 세제 개편안과 3000억원 규모의 연구개발(R&D)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 목소리를 높였다.
정작 기업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별다른 울림이 없는 이유가 있다. 재탕에다 일회성이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발표된 2020년도 정부 R&D 투자 방향 및 기준에서 언급된 고부가 가치 소재 개발, 산업 이슈 해결을 위한 응용 개발, 사업 부처 간 연계 활성화 등은 이번 대책과 중복된다. 결국 알맹이가 빠진 채 대국민 감정 호소에 그치는 수준인 셈이다.
국가 R&D 전략은 감성에 기대면 안 된다. 목표가 세워지면 방향을 정하고, 그에 따르는 세부 전략을 수립하는 동시에 집행 계획을 세우며, 집행에 따른 평가 기준을 만드는 등 일련의 프로세스로 움직여야 한다. 아직 계획조차 구체화하지 못하고 허둥지둥 대는 정부가 안쓰럽다.
장기로는 단타가 아닌 연타에 대비해야 한다. 현 정부의 반일 선동으로 일회성 예산을 투입하는 것에 그친다면 위기는 재발한다. 지금은 소재·부품 R&D 관리를 종합 및 체계화할 거버넌스 체계 개편이 선행돼야 하며, 후속으로 예산 투입과 제도 혁신을 병행해야 한다.
우리나라 중소 소재부품 기업이 대규모의 장기 R&D를 지속하기는 어렵다. 인재 발굴, 예산 확보, 산·학·연 연계, 기술 개발 인큐베이터 역할부터 범부처 R&D 연계, 성과 관리, 민간 투자 유도, 제품 상용화까지 연결하는 플랫폼 연구기관이 필요하다.
국내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해야 할 재료연구소는 아직 기계연구원 부설 기관에 불과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기관의 부설 기관에 산업 전반을 조율할 컨트롤타워 역할까지 요구하는 건 욕심이다. 일본의 물질재료연구기관(NMIS), 중국 금속연구원(IMR), 독일 프라운호퍼와 같이 우리나라도 재료연구소를 범부처 R&D 정책을 총괄 담당하는 기관으로 격상시켜야 한다.
만시지탄이지만 지금이라도 국가미래전략 체계에 기반을 둔 R&D 거버넌스 체계를 재점검하고, 국회에 상정된 법안을 조속하게 처리해서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 습자지처럼 얄팍한 대응 논리로 감성에만 호소하는 것은 아마추어나 하는 행태다.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생태계에서 도태될 뿐이다. 정부 부처도 선동에 휘둘리지 말고 국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체계를 제대로 정비하길 부탁한다.
김성태 의원(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자유한국당 간사) smart_kims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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