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수 200명 규모 중소 소프트웨어(SW) 업체는 최근 근태관리 시스템을 처음 도입했다. 주52시간제 시행 후 직원 근무 시간 기록을 제출해야할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직원수 100명 규모 중소 정보기술(IT) 서비스 업체는 직원 80%가량이 고객사에 상주하며 업무를 진행한다. 외부 근로 직원이 많아 근태 관리가 쉽지 않다. 고객사 요청에 따라 불시에 야근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300인 미만 50인 이상 중소 사업자 대상 주52시간제 시행이 10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업무 특성상 야근과 특정시기 일이 몰리는 SW·IT 서비스 업계는 여전히 제도 시행에 부정적이다. 일부 중소기업은 시스템 마련을 준비 중이지만 이마저도 기본적 솔루션 도입에 그친다. 제도가 본격 시행되면 중소 SW·IT 서비스 업계 타격이 불가피하다.
◇업계 60% 중소기업…제도 완화 목소리 커
SW정책연구소에 따르면(2018년 기준) 국내 패키지SW 업계 가운데 300인 미만 50인 이상 기업 비율은 62.3%다. 50인 미만 기업 비율은 24.7%로 소규모 기업까지 대상을 넓히면 87%에 이른다. IT 서비스 기업도 300인 미만 50인 이상 기업 비율이 49.7%로 절반가량이 중소기업이다.
업계는 내년 1월부터 주52시간제 대상이 중소기업으로 확대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준비기간에 100일밖에 안남았지만 아직 제도 시행 여부조차 모르는 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SW산업협회 관계자는 “일부 기업 문의가 있지만 대부분 중소기업은 제도 시행 시기나 중요성 등을 모르는 기업이 많다”면서 “제도 취지에 공감하지만 이대로 제도가 시행되면 중소기업이 다수인 SW 업계는 직격타를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최근 청와대 관계자를 만나 이 같은 상황을 전하는 등 대책이 필요함을 촉구했다.
SW·IT 서비스업은 프로젝트 마지막 단계에 고객 요구사항이 집중돼 야근, 주말 근무가 빈번하다. 안정적 시스템 가동을 위해 평균 2∼4개월가량 초과 근무가 발생한다. 전문성이 중요해 신규 인력 채용도 어렵다. 업계가 지난해부터 선택근로제 정산기간 연장을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업계는 이달 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시작으로 주52시간제 시행 관련 부처 관계자를 연이어 면담하며 업계 어려움을 전달하고 대책 마련을 요구할 계획이다.
조풍연 한국SW·ICT총연합회장은 “SW 업계는 신규채용 여력 없는 중소기업이 대부분”이라면서 “SW·IT서비스 업계 특성을 반영해 선택근로제 정산기간 연장 등 제도 개선뿐 아니라 나아가 특례업종(예외업종) 지정까지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계획대로 제도 도입 추진, 계도기간 부여 가능성 커
중소SW·IT 서비스 업계가 별다른 대책을 세우고 있지 못한 가운데 정부는 계획대로 내년부터 주52시간제 확대시행을 추진한다. 300인 이하 사업장 주52시간제 시행을 유예하는 것은 근로기준법 개정사항이라 정부에서는 아예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SNS를 통해 '300인 이하 사업장 주52시간제 시행 관련해 재점검 할 것'이라고 언급했지만, 소관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제도 시행을 촘촘히 점검하겠다는 원론적인 얘기라며 시행 유예 검토 등으로 확대해석 하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IT 서비스업계뿐 아니라 국내 전체 산업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서도 40%가량이 주52시간제 도입을 준비하지 못했다고 밝혔으나 고용부는 '제도 시행 유예는 없다'며 밀어 붙이고 있다.
권기섭 고용부 근로감독정책단장(국장)은 “일각에서 시행 유예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일단 법 개정사항이기 때문에 정부가 함부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시행 유예 자체가 주52시간제 문제점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뒤로 미루는 것밖에 안되기 때문에 정부는 시행 유예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는 국회에 계류돼있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등 내용을 담은 보완입법을 적극 추진한다. 탄력근로제 개편 없이는 내년 50~299인 기업의 주 52시간제 안착에 큰 어려움이 예상되는 만큼, 국회에 머물러 있는 탄력근로제 법안이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되도록 하겠다는 각오다.
300인 이상 대기업에 주 52시간제 도입 시 두 차례 부여했던 '계도기간'은 300인 이하 사업장으로 확대 시행되는 내년에도 부여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보다 대내외 경제 여건이 어려워진 데다 중소기업계가 대기업보다 경영 상황이 더 열악한 점을 고려하면 내년에도 계도기간을 지정할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제도 이행에 필요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연장 관련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내년 1월에 본격 시행하기에 무리가 따른다. 계도기간 부여는 법 개정 없이 정부 결정만으로 가능하다.
권 단장은 “정기국회에 보완입법에 총력을 다할 예정이고, 모든 게 다 잘 안 될 경우에 정부가 생각할 수 있는 옵션이긴 하지만 행정적 조치(계도기간 부여)는 일단 국회 상황을 보면서 고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선기자 river@etnews.com, 함봉균기자 hbkon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