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분쟁 상황에도 불구하고 올해 중국의 반도체 투자 움직임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외 불확실성 하에서도 반도체 투자만큼은 지속하겠다는 중국 정부와 기업들의 의지가 엿보인다. 특히 중국 업체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인력과 기술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인력, 기술 유출 등을 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25일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국내 반도체 장비 업체가 중국으로 수출한 금액은 12억2900만달러로, 1조원을 돌파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4억8300만달러)보다 3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메모리반도체 불황으로 매출이 크게 감소한 반도체 업계 분위기와는 상반된 수치다. 올해 글로벌 정보기술(IT) 수요가 크게 쪼그라들었지만, 중국은 '반도체 굴기' 선언 이후 기술 개발과 설비 투자에 박차를 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올해 전반적으로 반도체 경기가 좋지 않았지만 그나마 중국 반도체 시장의 분위기가 나은 편이었다”고 전했다.
중국 반도체 시장은 내년 더욱 성장할 전망이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올해 대만 다음으로 장비 투자에 공을 들인 중국은 2021년 1위였던 대만을 앞지르고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올해 중국에서는 메모리 반도체 굴기에 도전하는 소식이 다수 전해졌다. 최근 중국 정부는 '국가 반도체 펀드 2기 투자회사'를 설립했다. 33조원 규모 자본금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는 월 300㎜ 웨이퍼 4만장 규모 D램 공장 '팹1'과 연구개발 설비를 완공했다. 앞으로 월 12만장 수준까지 생산 능력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칭화유니그룹 산하 낸드 플래시 제조사 YMTC는 64단 256GB급 3D 낸드 양산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 6월 D램 사업 진출도 선언했다.
반도체 위탁 생산을 하는 파운드리 분야에서는 SMIC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올해 14나노미터(㎚) 공정을 확보해 제품 양산에 들어갔고 초미세 공정인 극자외선(EUV) 노광 기술 구현하기 위해 경력직을 채용하려는 움직임도 포착했다.
현지에서 기술 발전 방향을 논의하는 분위기도 뜨겁다. 일례로 7월 중순 푸젠성 샤먼시에서 열리는 중국 최대 반도체 행사 '2019 지웨이반도체서밋'에는 반도체 기업 관계자 400여명, 투자회사와 유관 단체에서 200여명이 칩 설계부터 후공정, 향후 투자 계획을 다방면에서 논의했다.
중국의 천문학적 반도체 투자는 세계 1위 메모리 기술과 생산 능력을 확보한 국내 업체에게는 큰 위협이다. 업계에서는 CXMT 양산 소식에 삼성전자가 중국 시안 공장 생산 능력 확보에 박차를 가하면서 초격차를 유지하는 전략을 펼친다는 추측도 나온다.
특히 국내 인력을 채용하면서 기술을 확보하려는 흔적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일례로 푸젠진화는 삼성, SK하이닉스 근무 경력이 있는 연구 인력을 영입한다는 인력 공고를 자사 웹사이트에 낸 경우도 있었다.
중국의 가파른 상승세와 기술 유출에 대비할 수 있는 기반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기술 유출을 우려해 지난 5월 산업기술유출방지법(산기법) 개정을 국회에 요청했다.
당시 반도체산업협회는 “정부 관련 기관이 보유한 국가 핵심 기술에 대한 정보는 비공개로 추진하고, 전문인력 전직을 제한하는 한편 비밀유지계약 체결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