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넘게 '산통'만 겪던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지난 9일 드디어 국회 문턱을 넘었다. 데이터 3법은 가명정보 개념과 근거를 명확히 해서 통계와 학술연구 등의 목적으로 각종 정보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또 빅데이터 활용 범위를 명확히 하고, 데이터 활용 안전장치와 사후통제 수단도 마련했다.
데이터 3법 처리는 4차 산업혁명 핵심 동력인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우리 산업계에 접목하기 위한 핵심 과제였다. 각종 법에 어지럽게 산재된 데이터 활용의 빗장을 풀어야만 정보가 자유롭게 유통되고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칫 20대 국회를 넘기면 또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만은 면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산업계가 활발한 데이터 활용을 통해 제조업의 활력을 끌어올리고 새로운 신산업을 창출하는 것이다.
우리 산업에 필요한 데이터는 크게 소비정보와 산업정보로 구분할 수 있다. 소비정보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이미 확고하게 짜여진 글로벌 주도권을 깨뜨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기회는 산업정보에 있다. 우리나라는 제조업 6위 국가로,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제조 관련 데이터가 축적되고 있다. 이 데이터를 잘 꿰는 작업이 필요하다. 포스코의 경우 이미 제조 현장에 AI와 빅데이터를 선도적으로 접목, 생산성을 끌어올렸다. 이 회사는 도금 공정에 AI를 도입, 수요처 요구에 따라 실시간으로 도금 두께를 바꿈으로써 도금량 편차를 15배 가까이 줄였다.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한 스마트고로는 육안으로 식별하던 쇳물 온도를 실시간 측정하고 자동 제어한다. 생산성 향상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경쟁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도 마찬가지다. 꿰기 전의 구슬 같은 산업정보가 지금도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온다.
정부도 데이터 3법 통과를 계기로 AI와 빅데이터를 산업에 적용하기 위한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출범시킨 'AI·빅데이터 산업지능화 포럼'도 그 가운데 하나다. 포럼은 산업 데이터의 수집·공유·연계·거래·확산·표준화 등을 위한 제도 개선 사항을 발굴하고, 국제 협력 방안도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산업지능화라는 키워드에 주목한다. 산업지능화는 주력 제조업과 에너지 산업 전반에 AI와 빅데이터를 도입해서 상품과 서비스를 고부가 가치화하고 제조 공정을 혁신하는 활동을 통칭한다. 올바른 방향이다. AI와 빅데이터가 산업 구조를 개편하고 제조업 활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의 경쟁 격화와 보호무역주의로 인한 우리 산업의 활력 저하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산업을 혁신시켜야 한다. 제조업 생산 방식을 효율화하고 연구개발(R&D)과 디자인, 조달, 유통, 마케팅 등 산업 전반의 밸류체인을 혁신시키자.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장벽이 등장할 수도 있다. 필요하다면 산업지능화를 위한 특별법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경제 활력은 결국 기업에서 나온다. 그리고 산업지능화가 바로 산업진흥이다.
양종석 산업에너지부 데스크 js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