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ICT 비례대표 '전문성·다양성' 위해 중용해야

20대 총선 ICT비례 1번 3인
21대 불출마 또논 험지 내몰려
정쟁 일삼는 국회서 혁신 한계
재선, 3선 키워 전문가 활용해야

2016년 국회 4차산업혁명포럼 창립총회 모습. 맨 앞줄 왼쪽부터 신용현, 박경미, 송희경 의원. <전자신문DB>
2016년 국회 4차산업혁명포럼 창립총회 모습. 맨 앞줄 왼쪽부터 신용현, 박경미, 송희경 의원. <전자신문DB>

'송희경·신용현 불출마, 박경미 험지 출마.'

지난 2016년 20대 총선에서 4차 산업혁명 바람을 타고 주요 정당의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에 입성한 과학·정보통신기술(ICT) 전문가 출신 의원들의 현 상황이다. 여야가 선거 때면 과학·ICT 분야 전문가를 영입하지만 전문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일회성' 의원에 머물게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들이 초선 활동 경험을 살려 재선·3선 의원으로 자리 잡아야 국회가 급변하는 시대에 대응하며 혁신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3개 핵심 정당의 비례대표 1번으로 영입된 인물은 KT 전무 출신 송희경 새누리당(현 미래통합당), 홍익대 수학교수 출신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출신 신용현 국민의당 의원이다.

이들 세 의원은 모두 이공계 출신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소속 정당은 다르지만 이공계라는 공통점 아래 20대 국회에서 협업했다. 2016년 4월 당선 직후 국회가 개원하기도 전에 '20대 국회 ICT 산업 활성화 토론'에 나란히 참석했다. 여야로 나뉜 의원들이 공통 주제를 위해 한자리에 모인 것은 기존 정치권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신용현, 송희경, 박경미 의원(왼쪽부터)이 2016년 4월 전자신문이 주최한 20대 국회 ICT 산업 활성화 좌담회에 참석했다. <전자신문DB>
신용현, 송희경, 박경미 의원(왼쪽부터)이 2016년 4월 전자신문이 주최한 20대 국회 ICT 산업 활성화 좌담회에 참석했다. <전자신문DB>

이들은 같은 해 '국회 4차산업혁명포럼'을 꾸려서 공동대표를 맡고 초당적 융합과 협치를 통한 미래 성장산업 혁신을 위해 노력했다. 포럼은 국회 우수 국회의원연구단체로도 연속 선정됐다.

비례대표 1번 초선의원들의 혁신을 향한 달리기는 여기까지였다. '일하는 국회의원'이 필요하다는 국민들의 여망이 어느 때보다 높았지만 여야의 끊임없는 정쟁 속에서 '정책 전문가'가 국회에서 버티기는 쉽지 않았다.

송 의원은 지역구 벽에 부닥쳐 21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 신 의원은 바른미래당에서 미래통합당으로의 이적 과정에서 생긴 이중 당적 문제 때문에 공천에서 탈락했다. 신 의원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박 의원은 유일하게 공천권을 따냈지만 험지인 서울 서초을에 출마한다. 전통의 보수 진영 텃밭 가운데 하나로, 초선의원이 넘기 쉽지 않은 곳이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비례대표로 20대 국회에 등원한 또 한 명의 ICT 전문가 김성태 통합당 의원은 마산합포에 도전했지만 공천받지 못했다. 김 의원은 한국정보화진흥원장을 지낸 전문성을 바탕으로 20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활약했지만 다음 회기에선 모습을 보기 어려워졌다.

과학·ICT 분야 비례 초선의원이 자리 잡기 어려운 이유는 정책이 아닌 정쟁 중심의 국회 문화 탓이 크다.

신 의원은 23일 “국회 입성 후 1년은 정말 신나게 일했는데 그 이후에는 정치 이슈에 발목이 잡혀 정책 활동을 하는 게 어려웠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책무인 상임위원회 법안 처리 활동이 조명받지 못하고 오히려 뒤로 밀리는 상황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신 의원은 “진짜 중요하고 토론이 필요한 법안은 의제로 올라가지 않고 여야 이견이 없는 이른바 '비쟁점' 법안만 국회를 통과하는 역설적인 상황(만 계속됐다)”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비례대표 제도의 한계도 거론된다. 송 의원은 “비례대표 취지가 '지역 이기주의 탈피와 전문성'으로 국회를 다양하게 만드는 것인데 재선을 노리면 중간에 지역을 정하고 입법이 아닌 당선을 위해 죽기 살기로 뛰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나마 과학·ICT 전문가가 비례대표로 설 자리도 좁아지고 있다. 21대 국회 여야 비례대표로 언급되는 과학·ICT 전문가는 이경수 전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부총장, 이영 전 한국여성벤처협회 회장, 조명희 경북대 교수, 하재주 전 한국원자력연구원장 정도다. 20대 때처럼 당선이 보장되고 상징성까지 겸비한 비례 1번 후보로는 거론되지 않는다. 일부는 당선 가능권에 배치될지도 불확실하다. 미래와 전문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민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각 당에서 전문가를 영입하고 그 비례대표가 재선·3선을 하는 일꾼으로 클 수 있어야 국회의 전문성이 살아날 수 있다”면서 “세계가 4차 산업혁명으로 향해 가는데 정책보다 정쟁만 일삼는 국회를 반복해선 안 된다”고 질타했다.

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