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상반기 대형 공공 정보기술(IT) 사업 가운데 하나인 미래등기시스템 구축 사업 규모를 기존 공고 때보다 200억원 이상 대폭 줄어든 금액으로 발주했다.
사업 금액은 줄었는데 과업은 첫 공고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업을 수주하는 업체의 적자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는 코로나19 여파로 공공 IT 시장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에서 공공 영역의 사업 규모 축소나 예산 삭감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미래등기시스템 구축 사업 제안요청서(RFP)를 조달청 나라장터에 공고했다.
미래등기시스템 구축 사업은 애초 지난달에 발주했다가 입찰 마감 사흘 전에 갑자기 '입찰취소공고'를 내는 등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대법원은 “구축 기간이 5년 장기수행 과제”라면서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연차별 투입 예산이 미확정 상황으로, 장기계속계약 불안정 요소인 총 구축비를 확정하기 위해 입찰공고를 취소했다”고 밝혔다.
대법원이 취소 한 달 만에 다시 사업을 발주했지만 업계 혼란만 가중시켰다.
우선 대법원은 사업 예산을 약 200억원 삭감했다. 지난달 1차 공고 시 사업 금액(예정)은 2020~2024년 897억원이었다. 그런데 한 달 만에 사업 금액을 200억원 이상 줄인 623억원에 발주했다.
예산 금액은 줄었는데 과업 범위는 이전과 비슷한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28일 “세부적으로 살펴봐야겠지만 지난달 처음 공고한 과업 범위와는 큰 차이가 없다”면서 “한 달 만에 갑자기 200억원 이상 예산을 줄여 발주를 낸 것도 이해하기 어렵고, 이 금액으로 과업을 진행하기는 어렵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미래등기시스템 구축 사업은 노후 시스템을 재구축하고 국가등기체계 개편 기반을 마련하는 사업이다. 단순한 시스템 추가가 아니라 시스템 전체를 개편하는 대형 사업이다. 이번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중소 소프트웨어(SW)·IT서비스 업계가 몇 개월 동안 인력을 투입해 준비했다.
업계 관계자는 “민간에서는 예산이 줄어들 경우 그에 맞춰 다시 과업을 줄이거나 조정해서 발주한다”면서 “예산을 줄였는데 해야 할 일 목록이 그대로라면 결국 200억원이 넘는 금액을 업계가 부담으로 떠안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황당해 했다.
업계는 올해 대형 공공 IT 사업이 이어질 예정인 만큼 대법원이 모범 사례를 남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공공 IT 사업 예산 삭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디지털 기반의 대형 IT 프로젝트를 기획·추진하라고 지시한 상황에서 공공 IT 예산 삭감 등은 정부 방침에도 어긋난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중소 SW업체 대표는 “코로나19 여파로 민간 시장도 축소된 상황에서 공공이 조기 발주는커녕 예산을 삭감하고 과업 변경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발주한 상황에서 참담함을 느낀다”면서 “과업 변경과 제대로 된 예산 반영은 업계가 수십년째 강조한 사안인데 대법원 사례는 이를 후퇴시키는 행태”라고 성토했다. 이 대표는 “올해 SW업계는 공공 시장에 많이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대법원이 변경된 예산에 맞는 과업 조정 등 공공 SW의 건전한 발주 문화를 만들어야 이후 공공 발주 사업도 이 분위기를 이어 갈 것”이라고 역설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예비타당성 확정 후 총사업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재부와의 협의 없이 대법원이 입찰을 진행해서 다시 조정하기 위해 지난달 입찰공고문을 낸 것”이라면서 “예산은 코로나19와 추가경정예산의 세출 구조조정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대법원은 다음달 9일까지 제안서를 접수하고 중순경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김지선기자 river@etnews.com, 유재희기자 ryuj@etnews.com
미래등기시스템 구축사업 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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