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엑시노스 9820', 엔비디아 '테슬라 V100', 구글 'TPU', 바이두 '쿤룬'. 각기 방식은 다르지만 인공지능(AI) 전용 프로세서란 공통점을 지녔다.
AI 소프트웨어 기술이 성과를 내면서 응용솔루션 개발이 잇따르자 이를 처리하는 프로세싱 기술도 빠르게 고도화되고 있다. 이를 둘러싼 글로벌 기업 간 경쟁도 치열하다.
그동안 AI 연산 처리에 가장 많이 활용된 기술은 중앙처리장치(CPU)가 아닌 그래픽용으로 쓰던 GPU다. 데이터 입력 순서에 따라 순차 처리하는 CPU는 기계학습, 추론과 같은 대규모 데이터를 처리하기에는 연산 속도와 전력 등의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CPU가 중앙에서 모든 데이터를 처리·제어해 연산량이 많아질수록 CPU와 메모리 사이 병목현상이 발생해 대규모 데이터를 처리할 경우 속도가 느려지고 막대한 전력 소모가 발생한다. 이를 해소한 것이 GPU다.
엔비디아는 2017년 GPU 컴퓨팅 아키텍처인 '볼타'에 기반한 프로세서 테슬라 V100을 공개했다. 볼타의 성능은 CPU 100대와 같은 수준 딥러닝을 구현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후 테슬라 V100은 마이크로소프트(MS), 바이두, IBM 등의 클라우드 서버에 적용돼 복잡한 연산을 요구하는 AI 서버에 활용되고 있다.
GPU 중심으로 이뤄지던 프로세서는 최근에는 AI 전용 시스템 반도체로 진화하는 추세다.
나영식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원은 “현재 AI 반도체가 GPU 중심으로 데이터 센터와 장치에 탑재돼 주로 활용된다면 이후에는 저전력·고성능에 특화된 반도체인 주문형반도체(ASIC) 방식 전용반도체로 변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대규모 데이터 처리를 위해선 기존 반도체 한계를 극복한 고성능·저전력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구글은 2016년 3월 알파고와 이세돌 첫 대전 때 CPU 1920개와 GPU를 동원했지만 이듬해 10월 '알파고 제로'에는 구글이 자체 개발한 AI 전용반도체 TPU 4개만 사용했다. 이로 인해 당시 전력 소모는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알리바바도 자체 개발한 NPU 기반 AI칩 '한광 800'을 개발,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에 적용 중이다. 광고, 제품검색, 자동 번역 등에 쓰고 있다.
국내에서도 AI 전용 반도체 개발이 한창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자체 NPU 기술을 개발해 '엑시노스9820'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에 탑재했다. 향후 삼성은 NPU 기술을 고도화해 서버·자동차 등으로 넓힐 예정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SK텔레콤은 AI 응용 서비스를 제공하는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등 고성능 서버에 활용 가능한 AI 반도체를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올해 하반기부터 지능형 CCTV, 음성인식 등을 서비스하는 SK텔레콤 데이터센터에 적용해 실증할 계획이다. 딥러닝 알고리즘별 메모리 요구량은 최대 70분의 1, 연산요구량은 최대 20분의 1 수준으로 감소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정구민 국민대 전자공학부 교수는 “AI 반도체 시장은 기존 글로벌 반도체 기업부터 구글, 아마존, 알리바바, 테슬라 등 비반도체 글로벌 기업이 가세했다”면서 “이종기업 간 협업으로 산업간 장벽을 무너뜨리며 주도권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국내도 초기인 만큼 팹리스 등과 협업으로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양한 응용 분야에 적용을 위해선 여러 아이디어가 모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추론·학습, 데이터 센터·디바이스 등 AI 시스템의 다기능을 지원하는 초저전력·초고성능 뉴로모픽 반도체 중심으로 진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뉴로모픽 반도체는 뇌의 신경세포인 뉴런의 역할을 담당하고, 메모리는 뉴런과 뉴런 사이를 이어주는 시냅스 기능을 담당 하는 반도체다. 인간의 뇌처럼 병렬로 구성하기 때문에 적은 전력만으로 많은 양의 데이터 처리가 가능하다. 뉴로모픽 반도체는 IBM이 '트루노스'를 개발한 것을 비롯해, 퀄컴, 인텔 등이 실험실 수준 반도체 개발에 성공한 상태다.
나 연구원은 “지난해 정부가 차세대 반도체 육성에 10년간 1조96억원 투자를 밝혔다”면서 “국내도 뉴로모픽 반도체 등 장기 기술 개발과 투자 리스크가 큰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에서 산·학·연·관이 서로 연계한 기술 개발과 실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