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리서치, 도쿄일렉트론(TEL), ASML 등 글로벌 반도체 장비업체들의 올 1분기 실적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오름세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물류와 공장 가동 일정에 차질이 생기고, 정보기술(IT) 기기 수요 감소 등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에서도 반도체 업체들이 시스템 공급과 투자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으로 해석됐다.
6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장비업체 램리서치는 올 1분기 6억9400만달러(약8500억원)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영업이익(5억6500만달러)보다 22.74% 증가한 것이다. 램리서치는 반도체 공정에서 웨이퍼에 회로 모양을 깎아 내는 '식각' 공정 장비를 주력으로 만드는 업체다.
일본 장비업체 TEL의 반도체 부문 매출도 회복세가 이어졌다. TEL은 회사 전체 매출의 약 95%를 차지하는 반도체 분야에서 지난 1분기(회계 기준 4분기) 매출을 3089억엔(약 3조5500억원) 기록했다. 이는 지난 5개 분기 매출액 가운데 가장 높다. 지난해 2분기 이후 감소세 없이 지속 증가했다. TEL은 반도체 공정에서 포토레지스트를 고르게 도포하는 코트 장비에서 점유율을 압도했다.
네덜란드 ASML도 지난해 1분기에 비해 영업이익과 매출이 동반 상승했다. 1분기 영업이익은 4억2700만유로(약 5700억원)를 기록했다. ASML은 예약 순매출액이 1분기에 30억유로(4조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ASML이 독자 생산하는 극자외선(EUV) 시스템 출하가 11대 예약되는 등 관련 장비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뜨거운 분위기다.
글로벌 주요 장비사 매출이 늘어난 이유는 지난해 메모리 불황이 걷히면서 관련 소자 업체들이 설비 투자를 본격 재개했기 때문이다. 특히 메모리반도체 1위인 삼성전자가 중국 시안, 평택 등 공장에 적극 투자하면서 핵심 장비업체들도 호재를 맞았다.
램리서치의 경우 식각 장비 최대 고객사인 삼성이 지난해 4분기부터 장비 구입을 상당량 늘인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 1분기 램리서치의 지역별 매출을 살펴보면 한국 비율이 눈에 띄게 늘었다. 지난 4분기까지 지역별 매출 가운데 한국 비율은 18%로 중국과 대만에 이은 3위였지만 1분기에 5%포인트(P) 늘어난 23%로 대만을 제치고 2위를 기록했다.
TEL의 한국 매출도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실적 발표 자료에서 “시스템반도체 및 파운드리 업계의 견고한 투자 속에 메모리 투자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현재까지 고객사 투자 계획은 눈에 띌 만한 변화 없이 기존 방침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짓고 있는 평택 P-EUV 라인에 메모리 공정을 위한 EUV 생산 라인을 갖추면서 ASML의 EUV 시스템도 조만간 입고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불확실성이 커졌음에도 반도체 업체들이 설비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장비업계는 물류 및 인력 공급 상황이 평소보다 까다로워졌지만 설비 가동 일정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실제 지난달 말 삼성전자가 중국 시안공장 신규 라인 증설을 위해 전세기로 파견한 200여명의 인력 가운데에는 핵심 장비사의 엔지니어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코로나19 확대로 미국 리버모어 공장 가동을 중단한 램리서치도 최근 공장을 재개한 것으로 파악된다.
장비업계 관계자는 “회사 내에서 출장을 최대한 자제할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고객사 요청 사항에 적극 대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실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