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4세 경영 포기와 무노조 경영 철폐 등을 담은 대국민 사과를 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권고에 따른 것이지만, 과거 잘못에 대한 사과를 넘어 미래 삼성 경영에 대한 계획까지 담았다. 이번 사과에 대한 준법감시위의 평가와 향후 이 부회장 재판에 대한 영향 등에 관심이 쏠린다.
◇10분간 세 번 허리 숙여
이 부회장은 굳은 얼굴로 등장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진심을 전달하려는 듯 세 차례나 허리를 90도 굽혀 절을 했다.
준법감시위가 요구한 경영권승계·노사문제·시민사회소통 3대 의제에 대해 핵심 의혹을 과감히 인정하고 강한 준법 의지를 드러냈다. 4세 경영권 승계 포기, 무노조 경영 폐지 선언 등 새로운 차원의 경영 쇄신도 약속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를 통한 승계 관련 뇌물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점을 언급하고 “저와 삼성을 둘러싸고 제기된 많은 논란은 근본적으로 이 문제에서 비롯된 게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 문제로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법을 어기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다면서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삼성에버랜드, 삼성전자서비스 등 삼성 노조 문제로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더 이상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사회와의 소통, 준법 경영이 재판을 앞둔 일시적인 조치가 아니라는 점도 재확인했다. 이 부회장은 본인 관련 재판이 끝나더라도 준법감시위가 독립적으로 지속 활동하도록 보장하겠다고 했다.
◇재판에 미칠 영향 관심
이 부회장이 준법감시위 요구에 충실한 대국민 사과문을 직접 발표하면서 국정농단 재판에도 긍정적 영향이 예상된다. 특히 특검이 제기한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 재판부 기피신청이 지난달 17일 기각된 점에서 대국민 사과문 역할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준법감시위를 비롯한 외부에서 이번 사과 수위와 내용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지는 변수다.
파기환송심 재판을 담당한 서울고법 형사 1부는 지난해 첫 공판에서 기업 총수 비리 행위도 감시할 수 있는 철저한 준법감시제도를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또 법원과 특검, 이 부회장 측이 각각 추천한 3인의 전문심리위원단이 삼성의 준법감시위 활동을 점검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반발한 특검이 재판부 기피신청을 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당하면서 기존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준법감시제도 마련 요구가 힘을 얻게 됐다. 현재 특검이 재판부 기피신청에 대해 재항고하고, 대법원이 이를 접수했다.
◇새로운 노사관계 정립은 과제
이 부회장이 전면적인 무노조경영 포기를 재확인한 만큼 삼성은 새로운 노사관계 정립이라는 과제를 부여받게 됐다.
삼성 창업 82년 만에 총수가 공식적으로 무노조경영 포기를 천명함에 따라 삼성그룹 내 다양한 노조가 설립될 전망이다. 현재 한국노총, 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이 삼성에 노조를 설립하기 위해 협상하고 있으며 삼성 디스플레이, 삼성화재, 삼성전자 등에 노조가 속속 설립되고 있다.
시민 사회단체의 삼성에 대한 감시도 한층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이 내부 노조 설립 분위기에 대한 감시나 탄압을 하는지 여부 등을 더욱 면밀하게 지켜볼 것으로 예상된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 김용주기자 kyj@etnews.com
"뇌물 혐의 재판 진행 중"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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