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아직 뾰족한 대책 없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와중에 대한민국에서 나타난 결과는 경이롭기만 하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처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선진국 상황에 비춰 볼 때 인구 밀집도 대비 최소 발병률, 최소 사망률, 최고 완치율 기록이 매점매석과 같은 사회 소요 사태 없이 현실로 있는 것을 보면 가히 대한민국은 수준 있는 민족이며 격조 높은 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정부의 슬기롭고 책임 있는 계도와 국민의 적극 참여 의식 결과임이 틀림없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 등 악재가 현 정권에 결코 이롭지 못할 것이란 객관화된 예측이 최근 치러진 총선에서 오히려 국민의 압도하는 지지를 받게 된 결과로 나타난 것이 이를 입증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아직 백신 없는 바이러스 특성상 '소멸이라는 공식 세계 선언'이 있기까지는 사회적 거리 두기 등의 신중함이 견지돼야 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5월 초 연휴 계획과 개학을 거론하는 것은 분명히 자제해야 할 때라고 본다. 그런데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산업·사회의 위중함은 거론되는 수준보다 훨씬 엄중, 심각성을 띠는 문제다. 우리나라는 해외 교역 비중이 큰 산업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나 국경 차단 수준의 국제 조치로 교역이 중단됨으로써 원자재 수급에 차질이 빈번해져 조업 단축, 실업률 증가 등 국가 및 사회에 심각한 문제로 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의존율이 다소 높은 제조업계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외국인 노동자의 본국 귀국 등으로 말미암은 노동력 공동화 현상도 심각하게 대두될 사안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는 정설이 있듯이 가치관이 자유주의를 넘어 방종에 가깝다 할 수 있는 젊은이와 일부 공직 부문 종사자들의 산업관, 직업관, 사회 국가관이 재무장되는 동기를 공유하고 있다는 역설을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정부는 개국 이래 최대 규모의 국민을 위한 재난 지원 예산을 준비하고 있다. 부디 이들 예산이 대한민국의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개선됐어야 할 목표와 코로나19 사태 이후에 달리 나타날 사회 변화에 가성비 높고 효과가 빠르게 나타날 수 있도록 쓰이게 되길 희구한다. 예를 들면 동족 방뇨식의 일시 효과보다는 변함없이 지속되는 국가경쟁력을 갖추는 뉴딜 수준의 기업 지원, 기술 개발 지원, 국제경쟁력 확보 지원, 고용안정 지원 등을 통해 사회와 국가의 안정 및 번영을 기약하게 되길 소망한다.
내친김에 비상시국을 돌파할 수 있는 중요한 제안을 한다. 경제는 생물과 같아서 경제에 정치(행정이 아닌)가 개입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점이다. 총선이 끝나자마자 '대권후보' 운운하는 논조를 다루던 언론의 행태는 코로나19로 인해 악화되는 경제·산업 상황과 괴리된 다른 세상 이야기 같다. 길지 않은 대한민국의 현대사에서만 보더라도 정치가 오염시킨 기업·산업·경제 사례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권력자가 기업인에게 다양한 형태의 요구를 하면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기업인은 전 세계를 통틀어도, 지난 역사를 훑어봐도 없다. 직접 고용 인원이 적어도 수십만명을 둔 기업인 입장이라면 더 그렇다. 권력자의 요구를 어쩔 수 없이 일부라도 수용하면 나중엔 법의 저촉을 받게 된다. 과거 정권에서 발생한 일로 사법 심판을 받고 있는 기업은 활력을 띨 수 없다. 특히 가부장제 한국 문화 기업 오너의 사례라면 더욱더 그러하다. 이는 기업, 국가, 사회에 대체 불가한 손실로 이어진다. 당장의 손실도 크겠지만 투자 및 연구개발(R&D)을 지체시키기 때문에 안게 될 미래 손실은 계량하기도 어렵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세계 경기 침체를 극복할 대승 및 국민 판단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러한 사회 및 국가의 경제·산업 측면에서 몇 년 동안 진행돼 왔음에도 확정되지 않은 삼성 오너에 대한 사법 판단은 어떠한 조건을 전제해서라도 유보돼야 함을 제안한다.
전 세계에 걸친 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대응, 일본의 도발에 대응하는 국산화 제고만을 명분으로 하더라도 세계 수준의 기업에 대한 국난 극복을 위한 노력 기회 부여는 당연한 조치로 검토돼야 할 것이다. 법은 존중돼야 하지만 국민 및 인류 사태 앞에선 엄정한 법도 집행을 유보한 판단 사례도 지난 역사에서 많았음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과 같은 시국에서 지도자를 문책하면 결과는 필패다. 법과 산업의 궁극은 국리민복을 위하는 것이라 믿는다. 지금은 전쟁보다 혹독한 절체절명의 때가 아닌가.
이억기 화이컴 회장, 전 한국디스플레이장비재료산업협회장 oklee@phic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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