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무난한가 싶었다. 그러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유료방송 플랫폼과 콘텐츠 진영 간 갈등이 재현됐다. 딜라이브와 CJ ENM이 프로그램 사용료 갈등으로 격돌했다.
10년 이상 반복되는 프로그램 사용료에 대한 플랫폼 진영과 콘텐츠 진영 간 갈등, 그리고 극적(?) 합의를 여러 차례 목격한 탓인지 낯설지 않다.
전례와 마찬가지로 딜라이브와 CJ ENM이 각자의 논리를 설파하는 건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포석으로 판단했다. 종전처럼 양보 없는 논리를 전개하다가 전격 합의할 것으로 추측했다.
그러나 딜라이브와 CJ ENM은 블랙아웃(채널 송출 중단) D-데이가 임박할 때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딜라이브와 CJ ENM 간 갈등이 지속되자 블랙아웃 D-데이를 앞두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중재에 착수했다.
과기정통부 중재에 따라 양사는 8월 31일까지 협상 기간을 연장했다. 이때까지 프로그램 사용료에 대해 합의하지 못할 경우 과기정통부 중재안에 따르기로 했다.
블랙아웃이라는 당장의 파국은 면했지만 양사 간 갈등이 본질적으로 봉합된 건 아니다.
딜라이브와 CJ ENM의 논리를 폄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제3자로서 딜라이브 입장도 CJ ENM 입장도 모두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다.
유료방송 시장에서 이해관계자 간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인터넷(IP)TV와 케이블TV 등 플랫폼은 지상파 방송사, 종합편성채널,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TV홈쇼핑 사업자와 사실상 해마다 마찰을 빚곤 했다.
갈등의 근본 원인은 재전송료, 프로그램 사용료, 송출 수수료 등 모두 '가격'이다. 갈등이 반복되는 건 기준 부재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 진영 간 소모적 설전 등 이해 충돌은 지겨울 정도다. 플랫폼 진영이든 콘텐츠 진영이든 모두 약자를 자처하며,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역학 관계 우열에 따라 좌우됐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옛말에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했다. 현재 상황에 딱 맞는 말이다.
플랫폼 진영과 콘텐츠 진영 간 프로그램 사용료를 둘러싸고 해묵은 구원이 있지만 양 진영 모두 합리적 대화를 바라고 있음은 분명하다. 흥정을 성사시킬 묘수가 당장은 없더라도 방치해선 안 된다.
공정하고 합리적 기준을 바탕으로 이해당사자 간 합의가 최선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시급한 게 프로그램 사용료에 대한 공론화다.
공론장 부재 때문일까, 플랫폼 진영과 콘텐츠 진영은 제대로 된 대화와 토론을 부정하고 극단적 입장으로 대립하고 있다.
이해관계에 따라 파편화된 공간에만 머물고 있다. 파편화된 공간에서 기존의 사고방식과 논리에 매몰돼 확증편향만 키우고 있다. 집단 간 격리와 균열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같은 구조에서 상호 이해와 합의는 질식될 수밖에 없다.
정부든 국회든 해마다 갈등을 반복하는 플랫폼 진영과 콘텐츠 진영을 그들만의 파편화된 공간에서 벗어나 공론장으로 나오도록 유도해야 한다. 공론장의 결론은 역학 관계가 아니라 집단지성에 의해 결정된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는 말도 있다. 딜라이브와 CJ ENM 간 프로그램 사용료 갈등을 계기로 이해당사자가 토론하고, 합리적 기준을 도출하고, 이를 수용하는 공론장의 서막이 열리길 기대해 본다.
김원배기자 adolf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