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다시 돌아보며

[기고]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다시 돌아보며

지난 1994년 가습기살균제가 개발되고 난 후 약 17년 동안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기업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태와 정부의 무관심이 불러온 사회 참사다. 이러한 비극을 극복하기 위해 2017년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특별법'이 제정·시행됐다.

특별법 제정 당시 폐섬유화·천식 등 2개에 불과하던 피해 질환이 10개까지 증가했고, 280명이던 피해자도 2900여명까지 늘었다. 지금까지 구제 범위를 계속 넓혀 왔지만 피해 신청자 6800여명 가운데 약 3900명은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또 피해 질환 인정 범위 확대와 비교해 피해자에게 지급되는 요양급여, 요양생활수당 등 구제급여 지급 수준은 특별법 제정 이후 변화가 없다.

다행히 지난 3월 24일 개정된 특별법이 시행되면 그동안 피해를 인정받지 못한 사람도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건강 피해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지금까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질환 중심으로 판단했다면 앞으로는 사람 중심으로 판정, 피해를 폭넓게 인정한다. 종전 법령으로 정해진 질환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돼 건강 피해가 발생 또는 악화한 경우 피해자로 인정될 수 있다.

피해자에 대한 지원도 강화된다. 우선 특별유족조위금이 상향된다. 법원은 가해자의 불법 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사망할 경우 1억원을 기준으로 위자료 산정에 참작할 개별 사유를 구체화해서 종합 고려, 위자료를 산정한다. 그러나 현재 특별유족조위금은 일반 사망 사건에서 인정되는 위자료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개정 특별법 시행령은 특별유족조위금을 약 4000만원에서 7000만원가량으로 상향하는데 일반 사망 사건 위자료 수준과 유사한 수준까지 올린다는 점에서 고무된다.

또 개정 특별법은 장해급여를 신설했다. 장해급여는 가습기살균제 노출로 인한 질환에 걸렸다가 치유된 후 신체 등에 장해가 생긴 사람에게 지급한다. 석면피해구제법, 환경오염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과 달리 건강 피해 완치 후까지 구제 범위를 확대한 것은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다. 그 외 요양생활수당에 대해 경미한 피해 등급을 신설, 지급 범위가 확대된다.

개정 특별법은 피해 인정 범위를 확대하고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했지만 아직 피해자가 받은 피해에 대한 충분한 배상이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특별법에 따른 구제급여는 불법 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이 아니라 구제 측면에서 이뤄진 것이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서는 가해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해야 한다. 개정 특별법은 피해자가 승소할 수 있도록 역학·상관 관계 등을 입증하면 사업자가 반증하지 못하는 이상 인과관계가 추정되도록 입증 책임을 완화했다.

그러나 현재 역학·상관 관계가 밝혀진 사례가 적고, 피해자가 스스로 역학·상관 관계를 입증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가해 기업에 손해배상을 받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

정부가 개정 특별법에 발맞춰 피해 구제 범위를 확대하고 지원을 강화한 점은 높이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가습기살균제와 건강 피해 간 역학·상관 관계 등 피해자 개인이 밝히기 어려운 부분에 대한 조사·연구는 여전히 부족하다. 정부는 피해자의 고통을 잘 헤아려서 역학·상관 관계를 밝히는 노력을 계속,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피해 구제를 충실히 이행, 피해자의 아픔을 달래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장용혁 법무법인 한남 변호사 yhchang@hannamlaw.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