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문학도를 꿈꾸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다들 유명한 소설 구절 몇 개는 기억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장 유명한 첫 문장을 꼽으라면 단연 하나가 있다. 대문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다.
번역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행복한 가정에는 공통점이 있지만 모든 불행한 가정에는 제각각의 이유가 있다.” 누군가는 이 구절을 기업에 빗대어 성공에는 왕도가 있지만 몰락하는 길에는 왕도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기업이 성장하는 데는 많은 걸림돌이 있다. 개중엔 태생적 한계라고 부를 만한 것도 있다.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것들도 있다. 종종 살아남기 위해 다들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혁신이 감동이 될 수는 없을까. 그런 사례가 한 가지 있다. 실상 혁신이란 없을 것 같은 곳, 어느 콜센터 얘기다.
애플트리는 흔하디흔한 콜센터였다. 여기에도 어찌해 볼 수 없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실상 이 곳 문제만은 아니었다. 콜센터 비즈니스라면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것이었다. 실상 전화 상담원들은 채 6개월을 버티지 못했다. 이직률이 110%에 달했다. 그런데 이게 업계에선 양호한 것이었다. 업계 누구나 손사래 치는 문제였다. 누구도 해결할 방법이 없어보였다.
최고경영자(CEO) 존 래틀리프는 뭔가를 해보기로 한다. 매출 1600만달러 회사가 220만달러를 이렇게 낭비할 수는 없었다. 메이크 어 위시 재단에서 아이디어를 하나 빌려온다. 애플트리 드림온은 이렇게 시작된다.
방법은 간단했다. 직원들이 자신이 꼭 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을 써내면 회사가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진다. 4주 동안 단 한 건의 신청도 들어오지 않았다. 직원들은 은연 중에 '설마'라고 말하고 있었다. 괜히 창피나 안 당할까 걱정됐다.
CEO가 나서 다시 2주를 홍보한 후에야 첫 신청이 온다. 사정은 이랬다. 한 여직원이 이혼을 하면서 아이들과 집에서 쫓겨나게 된다. 갈 곳이 없었다. 두 아이와 차에서 살고 있던 처지였다. 그녀의 바람은 아이들과 헤어지지 않고 생활하는 것이었다.
애플트리는 아파트 보증금을 내주기로 한다. 첫 달 그리고 마지막 달 렌트비를 대신 내준다. 렌트비가 밀리면 대신 내겠다고까지 했다. 텅빈 아파트에 다소간 세간살이도 마련해 줬다. 실상 이 일은 비밀로 돼 있었다. 하지만 “입 다물고 있는다고? 그럴 수 없어.” 곧 사내에 이 일은 알려지고 곧 다음 신청서가 날아온다.
이렇게 애플트리는 4년 동안 275개 프로젝트를 지원한다. 꼬마 딸에게 멋진 생일파티를 선물하는 것, 미뤄둘 수밖에 없었던 신혼여행, 애들을 놀이공원에 데리고 가기 같은 것들이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업계 고질병이던 이직률은 4년 사이 거의 4분의 1로 떨어졌다. 고객 불만은 줄었고 이윤은 증가했으며, 인크 매거진이 뽑은 '가장 빨리 성장하는 기업'에 7년 연속 뽑혔다. 한 해 220만달러짜리 문제가 드림온으로 잦아들었다. 4년 동안 275개 프로젝트에 든 비용은 대략 40만달러였다.
업계의 누구든 손들게 만들었던 문제를 애플트리는 어느 재단에서 빌린 방법으로 해결했다. 누구든 상상할 수 있고, 떠올려본 적 있던 그런 방법으로 말이다. 칼럼을 마치면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