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서비스 회사가 경영난에 처하면서 대금을 받지 못한 재하청 소프트웨어(SW) 기업에 발주처인 IBK기업은행이 대금을 직접 지급하라는 조정안이 나왔다. 미승인 하도급 사업이라 해도 공공기관은 사업 관리 의무가 있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SW하도급분쟁조정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 분쟁 권고안을 SW 하도급 업체에 전달했다.
이 사건은 기업은행이 추진하는 자산관리 구축 프로젝트에 참여한 중소 SW 업체 4개사가 대금을 몇 달째 받지 못하며 시작됐다. 기업은행 자회사 IBK시스템이 주사업자로 참여한 사업은 중소 IT서비스 기업 ABC솔루션이 하청을 받아 진행했다. ABC솔루션이 최근 경영난에 처하자 6월 초 프로젝트 하차 의사를 밝혔다.
ABC솔루션 하차 이후 ABC솔루션 하청을 받은 SW기업 4개사가 추가 대금을 받지 못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기업은행은 IBK시스템을 통해 3월까지 진행한 분석·설계 대금을 ABC솔루션에 지급했다. 그러나 SW기업 4개사가 최종 인력 철수까지 근무한 2개월 9일치 대금은 지급하지 않았다. 기업당 많게는 1억원 이상, 적게는 약 8000만원을 받지 못했다.
기업은행은 IBK시스템과 계약했기 때문에 SW기업과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IBK시스템도 ABC솔루션 협력사(재하청기업)와 직접 계약 관계가 없어 별도의 대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반론을 폈다. SW업계는 SW하도급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요청했다. 위원회는 기업은행이 기타공공기관으로서 관련 법률(국가계약법 등)에 따라 사업 관리 의무가 있고, 하도급 관리 등도 해당 의무에 포함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프로젝트가 미승인된 하도급이라 하더라도 하도급법 제1항 제1호(원사업자 지급정지·파산, 그 밖에 유사한 사유)에 따라 발주자가 원사업자(ABC솔루션)에 지급한 금액을 제외한 미지급 금액 일부를 SW기업에 지급할 것을 권고했다.
기업은행은 일부 협상 여지가 있지만 위원회 권고안을 모두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13일 “SW 공급 계약 금액에 대해서는 협의할 여지가 있지만 용역 대금에 대해서는 기성금액 대비 초과 지급이 된 상태로, 지급 근거가 없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재하청 업체는 패키지 대금과 관련해 IBK기업은행이 에이비씨 솔루션에 지급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기업은행이 용역 수행사를 인력파견업체라고 정의한 것도 잘못됐다고 설명했다.
해당 기업 관계자는 “당시 제출한 계약서에 명기된 것처럼 선수금 20%, 중도금 40%, 잔금 40%로 된 도급 계약을 체결한 명백한 하도급 계약”이라면서 “도급사 자격으로 착수보고회에도 참석했는데 이 같은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건 명백한 불공정 계약”이라고 지적했다.
업계는 분쟁조정위원회 조정안이 나온 후에도 기업은행, IBK시스템과 협의했지만 여전히 책임만 떠넘기는 행태를 보인다고 토로했다. 한 업체 대표는 “위원회가 용역 인건비 부분과 관련해 합리적 대금 지급 규모를 산정해서 조정할 것을 권고했다”면서 “위원회 권고로도 조정이 안 되면 대금을 받기 위해 상위 기관 중재 요청 등 여러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선기자 river@etnews.com,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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