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큰 별이 졌다. 해외에서 장기간 체류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1990년대 이후 고(故) 이건희 회장의 이끈 삼성이 국가 브랜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알 것이다. 2세 경영이었지만 한국 재계 서열 3위권의 삼성을 세계적인 초인류 기업으로 만든 업적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스타트업 창업자가 벤치마킹할 만한 고 이건희 회장의 기업가정신을 필자는 키워드로 '비전' '방향' '변화' '품질관리' 4개로 정리해 보았다.
고인은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취임한 뒤 1993년 '삼성 신경영' 선언 이후 세계적 초일류 기업을 지향해 왔다. 세계 초인류 기업은 삼성 근로자에게는 '비전'이었다. 이 비전에 걸맞은 문화를 고인이 구축해왔다. 신경영 선언 이후 고인은 인간미와 도덕성, 예의범절과 에티켓을 삼성의 전 임직원이 지녀야 할 가장 기본 가치로 보고, 양을 중시하던 기존의 경영 관행에서 벗어나 질을 중시하는 문화를 안착시켰다. 학연·지연을 넘어선 더 많은 세계 인재들이 삼성에 들어왔고 삼성은 초인류 기업 문화로 그들을 대접했다.
고인의 '방향' 제시는 탁월했다. 그 방향성은 스티브 잡스처럼 직관에서 나왔다기보다 트렌드를 읽기 위한 삼성 내 조직 강화와 관련 프로세스 구축이었다. 고인은 삼성경제연구소 등의 리서치 조직뿐만 아니라 전 세계 트렌드를 분석하는 조직을 기반으로 프로세스에 의해 성공확률이 높은 미래방향을 결정했다.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반도체 사업도 이 프로세스에 의한 방향 제시로 나온 산물이다. 1984년 64메가 D램을 개발하고 1992년 이후 2001년 세계 최초 4기가 D램 개발, 세계 최초 64Gb 낸드플래시(NAND Flash) 개발(2007년), 2010년 세계 최초 30나노급 4기가 D램 개발과 양산, 2012년 세계 최초 20나노급 4기가 D램 양산 등 성과를 내며 20년간 D램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지속 달성해 2018년에는 세계시장 점유율 44.3%를 기록했다.
고인은 끊임없는 '변화'를 주문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며 변화를 강조했고 늘 위기임을 강조했다. 기술 급변기의 삼성은 늘 위기임이 맞았다. 동시대의 모토로라, 노키아 등 몰락은 얼마나 삼성이 변화에 성공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2005년 고인의 밀라노 선언은 삼성의 디자인 혁신에 대한 또 다른 방향성 제시였다. 선언 후 10년 후에 나온 '갤럭시S6 엣지' 등이 그 디자인 변화의 산물이다. 삼성전자는 밀라노에서 2013년에는 '편의성을 높이는 디자인'에 주력해 회의를 열었고, 2014년에는 디자인 경쟁력으로 '삼성전자만의 차별화된 가치'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품질관리'다. '휴대폰 화형식'은 고인이 얼마나 품질을 중시했는지를 알 수 있다. 전 세계 글로벌 기업들도 고인의 삼성 품질관리 방식에 대해 두려워했다. 고인은 특히 '제품에 혼과 문화를 불어넣으라'며 끊임없이 장인정신을 강조했다. 안일하고 낡은 사고에 빠져 잠자던 삼성을 쇄신하여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세계 일류기업으로 세웠다.
'비전' '방향' '변화' '품질관리'로 요약되는 고인의 기업가정신을 기반으로 삼성은 취임 당시 10조원이었던 매출액이 2018년 387조원으로 약 39배 늘었으며, 이익은 2000억원에서 72조원으로 259배, 주식의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396배 증가했다.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 경영원리가 다른 부분은 분명 있지만, 고인이 추구했던 본질적인 기업가정신은 스타트업 창업가들도 벤치마킹해보기를 바라며 고인을 기린다.
전화성 씨엔티테크 대표이사 glory@cnt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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