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신산업 지상좌담회]<3>생산인구 감소 등 인구 변화에 따른 한국 제조업의 미래

#통계청이 지난 2월 발표한 '2019년 인구동향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2019년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0.92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사상 처음으로 1명 아래를 기록한 전년(0.98명) 보다 더 낮아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한 '0명 대 출산율' 국가다.

합계출산율이 1명으로 유지되면 30년 후 태어나는 출생아 수는 현재의 절반 수준이다. 생산가능 인구가 급격히 줄고, 고령인구가 급증하는 '인구절벽'이 현실로 다가왔다. 50~60대가 은퇴하는 10~20년 후 제조업을 비롯한 우리나라 주요 산업의 지속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라 글로벌가치사슬(GVC)이 급변하고 있다. 비대면 기반 기술 수요가 폭증하는 한편 주요 국가에서 '리쇼어링(본국회귀)'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 시대 신기술 확산에 따라 새로운 시장도 개화하고 있다.

전자신문과 산업통상자원 R&D전략기획단은 '산업환경 초변동 3대 요인과 미래 신산업 육성'이라는 대주제 아래 세 번째 순서인 '생산인구 감소 등 인구 변화에 따른 한국 제조업의 미래'에 관한 산업적·기술적·정책적 방향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인구절벽에 선 우리나라가 미래 신산업 시장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산·학·연 전문가들의 혜안을 모았다.

[미래신산업 지상좌담회]<3>생산인구 감소 등 인구 변화에 따른 한국 제조업의 미래

[참석자(가나다 순)

△강철희 고려대 명예교수

△이경일 솔트룩스 대표

△윤광준 스타라인 회장

△윤주현 한국디자인진흥원장

△장지상 산업연구원장

△사회=이규택 산업통상자원 R&D전략기획단 신산업 투자관리자(MD)

◇사회(이규택 산업통상자원 R&D전략기획단 신산업 MD)=정부는 인구 구조 변화에 따른 다양한 지원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의료 보건, 스마트케어, 고령친화산업 육성 정책, 교육·인프라 투자 부문 등 대표적이다. 미래 산업 변화를 대응하는 측면에서 우리나라 산업기술 연구개발(R&D) 역량과 수준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가. 생산인구 감소에 따른 신산업과 기술 발전 전망을 함께 제시해 달라.

장지상 산업연구원장
장지상 산업연구원장

◇장지상(산업연구원 원장)=우리나라는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 제조업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4~5년 전부터 중국이 생각보다 빠르게 우리를 추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생산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 인구가 늘어나면 더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생산 가능 인력이 감소하면 생산성을 높여서 대응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에 따른 제조업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스마트 제조'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이는 기업이 생존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스마트 제조는 제품 기획부터 R&D, 시장수요 예측, 생산, 판매까지 모든 과정을 데이터로 전환해 상호 연결하고 지능화·최적화해야 한다. 모든 가치사슬을 '스마트화' 해야 진정한 스마트 제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스마트공장은 대부분 생산 단계에 초점을 맞춰 자동화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생산성은 높일 수 있지만, 결국 동일한 상품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이윤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다.

스마트 제조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공급 측면의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AI 소프트웨어(SW)와 센서, IoT 설비, 엔지니어링 등이 함께 발달해야 한다. 중소·중견기업이 스마트 제조를 도입하도록 돕는 컨설팅 서비스도 요구된다.

한국형 '스마트 제조'를 확산하기 위해서는 산업별, 기업별 표준이 필요하다. 주체에 따른 혁신 역량을 진단하고 이에 대응하는 정책 수단을 차별화해야 한다.

강철희 고려대 명예교수
강철희 고려대 명예교수

◇강철희(고려대 명예교수)=이차전지 산업에 주목해야 한다. 이차전지는 사용 후 재충전 과정을 거쳐 수백회 이상 재사용 가능한 전지다.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와 화석연료 고갈 우려에 따라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부각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이차전지 산업은 LG화학, 삼성SDI, SK에너지가 좋은 실적을 거두고 있고, 국산화율이 높다. 자국에서 검증된 전지 업체를 확보하기 어려운 미국과 유럽 자동차 업계가 한국의 이차전지와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리튬이온전지는 급속 충전에 한계가 있다. 무리하게 충전 시간을 단축하거나 방열 시설이 고장 나면 화재 발생의 원인이 된다. 최근 태양광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전기차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이 대표 사례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전고체전지다. 전해질을 고체로 바꿔 발화 요인을 없앤 형태다. 현재 시제품 개발이 추진되고 있지만, 상용화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또 다른 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리튬공기전지도 마찬가지다.

이차전지 시장은 현재 118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자동차와 ESS 관련 시장이 58조원 수준이다. 현재 국내 업체들이 화재 위험성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앞으로 국산화율을 한층 높이는 것은 물론 충분한 R&D를 추진해 시장 점유율을 높여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외국기업 전기차 수입 시 국산차와 동일하게 정부 보조금을 지원한다. 그러나 중국은 한국산 이차전지를 차별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불공정한 운동장에서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앞으로 정부가 국내에 전기차 충전소 인프라를 확대해야 한다. 전기차 보급률이 높아지면 이차전지 수요도 그만큼 늘어난다. 작년 5월 기준 전국 공공충전소는 1만864에 불과하다.

최근 아파트 신축 시 휴대전화 기지국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이 나왔다. 이를 전기차 충전소에적용하면 인프라 확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경일 솔트룩스 대표
이경일 솔트룩스 대표

◇이경일(솔트룩스 대표)=AI 분야 R&D에 관한 조사들을 보면 우리나라가 다른 선진국 대비 평균 2년 정도 뒤처져 있다는 결과를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미국 등 다른 나라가 만든 원천기술을 빠르게 배워서 적용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직접 개발해서 사용하는 AI는 거의 없다. 원천성을 중심으로 보면 10년 이상 차가 있다고 볼 수 있다.

AI는 규모의 경제로 접근해야 한다. AI는 장치 산업화되고 있다. 최근 미국 오픈AI가 'GPT-3'라는 엔진을 내놓으면서 화제를 모았다. 사람의 말과 글을 배워서 대화도 하고, 질의응답을 하고, 글도 쓰는 기술이다.

가장 좋은 컴퓨터를 계속 돌려서 같은 수준 학습을 진행하면 꼬박 360년이 걸린다. GPT-3는 중앙처리장치(CPU) 30만개, 그래픽(GPU) 1만개를 사용해 두 달 만에 끝냈다. AI도 반도체처럼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한국에는 이 같은 인프라가 없는 데다 개별 기업이 하기도 어렵다.

다행스럽게도 디지털 뉴딜이 추진되면서 모든 산업에 데이터를 접목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방대한 데이터를 만들더라도 저비용으로 학습할 수 있는 인프라가 없는 상황이다. 앞으로 대규모 투자와 R&D 협력이 없다면 다른 국가와의 경쟁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 AI 부문에서도 인프라에 선행 투자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여러 분야로 나누지 않고 집중 투자를 해야 한다.

R&D 관점으로 전략적 투자가 가능한 곳을 봐야 한다. 우리가 더 빠르게 투자하고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윤광준 스타라인 회장
윤광준 스타라인 회장

◇윤광준(스타라인 회장)=현재 기술 발전 방향은 우연하게도 생산 인구 감소와 상당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AI와 로봇, IoT 등 기술 발전이 업무 효율과 연결되고 있다. 산업 현장에서는 훨씬 빠른 변화를 체감할 수 있다.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업무 개선이 빠르게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 감소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다.

일상생활도 더 편리해지고 윤택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선 AI가 결정 시간 자체를 단축했다. 업무 효율화도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 IoT를 이용한 스마트 디바이스로 자신의 몸 상태를 측정하고 분석해 전송하고 있다. 병원에 가지 않아도 가장 좋은 의료진에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형태로 발전했다. 자율주행기술이 등장하면서 차 안에서 버리는 시간 없이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 산업 구조는 특히 생산인구 감소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기술 발전에 집중하고 선두주자 자리를 유지해야 인구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투자 관점에서 보면 정보기술(IT)과 의료, 바이오가 접목된 디지털 케어 산업이 각광을 받고 있다. 아직 국내산업의 기술 수준은 많이 뒤처져 있다. 이에 대한 국가적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윤주현 한국디자인진흥원장
윤주현 한국디자인진흥원장

◇윤주현(한국디자인진흥원장)=미래 산업에서는 '인텔리전트(지능화)'가 중요하다. 이는 '스마트'와 일맥상통한다. 단순히 편리함을 제공하는 것에서 벗어나 행복감을 제공하는 단계까지를 의미한다.

인간은 성장의 욕구와 함께 육성의 욕구를 가지고 있다. 최근 펫(반려동물) 산업이 활성화하고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국내 인구수가 1500만명에 달한다. 많은 기업들이 펫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대하면서 디자이너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리틀캣은 디자이너 아이디어에서 나온 고양이 전용 러닝머신이다. 국내외에서 인기를 끌며 스타트업 성공사례로 꼽힌다. 스마트팜에서는 생산물을 건강하게 키우기 위한 온도, 습도, 영양분 등을 데이터화 할 수 있다. 인구 감소에 따른 불안만큼 예상치 못한 산업이 발전하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기회가 되고 있다.

최근에는 '프러덕트 서비스 시스템(PSS)'도 주목 받고 있다. 예를 들어 화분을 구매하면 전문가가 한 달에 두 번 물을 주러 소비자를 방문하기도 한다. 여기서 비즈니스를 확장해 화분을 바꿔주는 개념도 있다. 이처럼 제조업도 데이터 확보 방식과 비즈니스 연결 방안을 고민하면 스마트화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규택=우리나라 기업들이 산업 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선제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정부의 산업기술 R&D 전략과 방향에 대한 고견과 조언을 부탁한다.

◇장지상=정부가 산업기술 R&D 전략 관련한 방향은 제대로 잡았다고 본다. 하지만 전부 다 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 산업에 최적화된 비전과 방향을 정해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개방형 혁신 시대다. 국가, 기업 등 대상을 불문하고 유연하게 연계해 활용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산업기술 R&D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서는 기술금융 제도도 필요하다. 현재 기술이나 특허를 제대로 평가해 자금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약하다. 산업 관련 부처와 금융위원회가 상호 밀접하게 협력할 수 있는 거버넌스 구축이 시급한 과제다.

◇강철희='휴먼팩터 지능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선대의 노하우를 후대에 전수, 공유, 저장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20년 이상을 내다보는 장기적 연구가 필요하다.

또 정보통신기술(ICT)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ICT는 모든 산업에서 필수 불가결한 핵심 기술이다. 그러나 극히 일부분의 전문지식으로 전체 시스템을 통합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정부 모든 부처에서 독자 시스템을 구축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제품 납품자의 자의적 조언으로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한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적용된 시스템은 거대한 유기체다. 통신망, 서버 등을 통합 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정부가 지속적으로 인력을 양성, 10~20년 경험을 가진 인력을 산업 시스템을 설계하는 데 투입해야 한다. 운전면허를 가진 자에게 자동차 설계를 맡기는 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이경일=R&D 방식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연구 논문 쓰고 저널에 내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컨퍼런스에서 공개하기도 한다. 이 같은 패러다임 변화는 기존 체계로 관리하기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3년치, 5년치 계획을 세우고 결과를 내라는 현재의 틀을 바꾸기는 어렵다. 다만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기 위한 체계가 필요하다.

현재 평가 체계에서는 논문, 특허 등을 본다. 기준에 미달하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R&D 성공률은 90%를 훌쩍 넘는다. 수치만 맞추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2억~3억원 짜리로 분산돼있는 R&D 과제의 대형화도 필요하다. 1000억원 이상 R&D 과제를 기획해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한다.

미국은 상당히 많은 R&D를 수행하고, 정부가 결과물을 구매한다. 판로를 만들어주기 위함이다. 우리나라의 R&D 구조 변화가 지속 논의되기를 바란다.

◇윤광준=대형 R&D 프로젝트 필요성에 공감한다. 여러 업체에 나눠주면 힘이 분산될 수밖에 없다. 과제 기획 단계에서 대형화해서 관계된 기관들이 시너지를 내도록 해야 한다.

우수인력 확보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인력시장에 대해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 실리콘밸리 기업 지분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현재 정부는 기업의 해외 진출만 지원하고 있다. 해외기업 투자, 창업 등으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 예컨대 과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CDMA(코드 분할 다원접속) 상용화 당시 퀄컴 지분에 투자를 했다면 어땠을까. 앞으로 테슬라 같은 기업에 투자를 한다면 그동안 겪은 문제들을 효율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

실버 인력을 위한 국가적 차원 데이터 플랫폼도 필요하다. 기업은 저비용으로 인력을 확보하고, 실버 세대는 사회활동을 지속할 수 있다.

◇윤주현=조선시대 왕들은 민간이 어려울 때 교량과 길을 깔았다. 지금은 이를 데이터 작업으로 대체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정부는 1979년부터 디자인 R&D 부문을 지원했다. 당시는 비용을, 2000년대는 인프라 구축, 201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디자인과 기술 융합을 도왔다. 앞으로 10년은 '백 투 베이직'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디자인을 학문으로 인정하고 R&D를 추진해야 한다.

그동안은 단순히 양을 늘리는데 집중했다. 현재 디자이너 수는 30만명 이상이다.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스타'를 키워야 한다. 교육은 최소한 10년 이후 결과를 알 수 있지만, 실제 교육 사업은 5년이면 종료된다. 긴 호흡의 지속적 투자로 산업 발전을 위한 연구 환경을 마련해주길 바란다.

사진=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

정리=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