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특허청이 반도체산업협회에서 '한국형 증거수집 제도(K-디스커버리)' 관련 간담회를 개최했다.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체 중심으로 제도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산업계 의견을 직접 청취하겠다는 취지였다. 예상대로 소부장 업체는 강하게 반발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위상을 감안할 때 법안이 도입되면 외국 기업의 특허 소송이 빈번해지면서 생태계가 망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허청은 일부 부작용을 걱정하지만 선진화한 특허 제도가 중장기적으로는 기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일부 반대에도 제도는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K-디스커버리는 선진국에서 먼저 도입해 성공한 특허소송 제도다. 특허권자가 피고 측 증거 조사를 법원에 신청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상대방이 피고의 증거를 수집할 수 있다는 점이 기존 제도와 다르다. 피해 업체가 특허 침해까지 입증하던 불합리한 상황을 개선할 수 있어 선진화한 소송제도로 불린다. 핵심 증거를 신속히 확보, 소송 기간과 비용까지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단점도 만만치 않다. 영업비밀과 같은 특허가 공개되면서 특허 시비에 쉽게 휘말리고, 자칫 이를 악용해 소송을 남발할 수 있다. 무엇보다 특허권자에 따라 유불리가 크게 갈린다. 외국 업체가 특허를 과점하는 반도체 시장에서는 치명타일 수 있다. 반도체 특허 건수는 미국과 일본이 압도적으로 높다. 6월 기준으로 일본 도쿄일렉트론의 누적 특허출원 건수는 8700여건, 미국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와 램리서치도 각각 5600여건, 2000여건에 이른다. 반면에 이들 업체에 비하면 한국 업체의 특허는 조족지혈이다.
보완 대책이 필요하다. 한국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 K-디스커버리는 분명 의미가 큰 제도지만 자국 업체를 보호하지 못하고 외국 업체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면 역차별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한국 반도체 업체는 미국, 일본 등이 수시로 견제하는 상황이다. 산업계를 위한 어떤 방향이 올바른지 정부는 곰곰이 따져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