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반도체 시장에서의 반도체 품귀 현상은 올해 말까지 쉽게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국내 업계에서는 차량용 반도체 국산화 등 다양한 해결책을 찾아 나서고 있다. 근본 원인인 파운드리 공급 부족 현상에 대응하기 위한 국내 수요기업과 기존 기업의 공동 투자가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다.
반도체 품귀 현상이 일어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일어난 언택트 수요 증가와 파운드리 공급 부족 문제 때문이다.
특히 올 초부터 완성차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도 파운드리 쇼티지와 큰 연관이 있다. 다수 팹리스 업체들이 '언택트' 붐 이후 정보기술(IT) 기기용 반도체 생산을 늘리면서, 차량 수요 회복에는 미처 대응하지 못하게 되자 수급량에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한 차량용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대만 TSMC, UMC 등 주요 차량용 반도체 생산 업체에서 병목현상이 발생했지만 해결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9월까지는 정체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파운드리 부족 현상이 차량용 반도체 부족만을 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전반에서 생산 능력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시스템 반도체를 구하는 일이 점점 '하늘의 별 따기'가 되고 있다.
특히 구(舊) 공정에 속하는 8인치 웨이퍼 파운드리 생산 라인이 상당히 바쁘게 가동되고 있지만, 밀려드는 수요를 일일이 대응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미 국내 파운드리 업체 DB하이텍에서 제품을 생산하려면 6개월을 기다려야 하고, 삼성전자는 올해 8인치 파운드리 생산 주문이 이미 꽉찬 상태인 것으로 전해져 있다.
그러나 파운드리 업체들의 설비 투자 결정은 쉽지 않다. 8인치 웨이퍼용 파운드리 장비는 희소성이 높아 구하기가 상당히 힘든데다 투자를 하더라도 이윤이 많이 남는 12인치 웨이퍼 장비 투자를 선호한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8인치 공정을 활용하는 업체들에 그나마 상황이 나은 12인치 공정 활용을 권유하거나, 12인치 공정 장비를 8인치용으로 개조하는 작업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국내에서는 생태계 변화를 위한 다양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움직임은 정부 주도 '미래차-반도체 연대·협력 협의체' 발족이다. 자동차 업체의 높은 차량용 반도체 해외 의존도를 낮추면서 우리나라에서 자체 생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자는 취지다.
정부가 수요 기업과 반도체 업체 간 가교 역할을 자처하면서 차량용 반도체 인력 양성에도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또 반도체 품귀 근본 원인이 파운드리 공급부족 현상인 만큼, 국내 파운드리 생태계를 육성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삼성전자, DB하이텍, SK하이닉스시스템IC, 키파운드리 등 토종 파운드리가 있지만 파운드리 선진국 대만처럼 다양한 종류의 반도체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은 부족한 상황이다.
기존 반도체 기업과 수요 기업 간 협력이 파운드리 쇼티지 현상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전문가 진단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기존 반도체 기업과 반도체가 필요한 수요 기업이 함께 파운드리 투자에 나서면 국내 공급망 안정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