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 장비 수급' 사활…美 AMAT·램리서치 찾아 담판

핵심 관계자, 코로나 뚫고 직접 방문
네덜란드 ASML 본사 출장도 다녀와
美 반도체 자립화·TSMC 파운드리 증설
글로벌 반도체 업계 '장비 쟁탈전' 심화

삼성전자 평택 2라인(P2) 전경.<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평택 2라인(P2) 전경.<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가 반도체 핵심 장비 수급에 사활을 걸었다. 삼성전자 핵심 관계자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을 뚫고 주요 반도체 장비 회사가 있는 미국, 네덜란드 등으로 건너가 원활한 장비 공급을 요청하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자립화, 대만 TSMC의 파운드리 증설 등으로 반도체 설비투자가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 장비 쟁탈전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DS부문 핵심 관계자는 이번 주 주요 장비업체 본사가 몰려있는 미국으로 출국한다. 반도체 생산 라인에 필요한 장비 수급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이 관계자는 반도체 장비업계 1위인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의 개리 디커슨 CEO, 식각 장비 분야 선두주자 램리서치의 팀 아처 CEO 등을 만날 것으로 보인다.

이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설비 투자에 필요한 장비 납기를 지속 앞당기는 상황에서 핵심 관계자가 장비 회사에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 미국에 직접 가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또 다른 핵심 관계자도 네덜란드 출장을 다녀온 것으로 파악된다. 네덜란드에는 극자외선(EUV) 공정용 노광 장비를 세계에서 단독으로 공급하는 ASML 본사가 있다. 지난해 10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방문한 회사이기도 하다.

업계는 코로나19 팬데믹에도 삼성전자가 직접 장비사를 방문해 수급 안정화를 요청하는 것에 주목한다. 글로벌 반도체 장비 확보전에서 우위를 가져가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최근 글로벌 반도체 업계는 정보기술(IT) 기기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생산 라인 신규 투자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평택 2공장과 중국 시안 공장을 중심으로 최신 메모리 및 파운드리 생산 능력을 공격적으로 올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 기세라면 올해 삼성전자 설비투자액으로 예상된 35조원을 훌쩍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고 점쳤다.

파운드리 1위 업체인 대만 TSMC는 5나노 라인을 중심으로 12인치 웨이퍼 기준 월간 10만장 생산 능력을 확보한 것으로 파악된다.

반도체 생산라인을 갖추려면 핵심 전공정 장비 확보는 필수다. 특히 AMAT, 램리서치, 도쿄일렉트론(TEL), ASML 등 세계 4대 반도체 장비업체는 세계 시장점유율 60~70%를 확보한 굴지의 회사들이다. 더군다나 칩 생산을 위한 공정 수가 늘어나면서 이들의 존재감은 더욱 커지는 추세다.

문제는 각 장비 회사의 장비 생산 능력이 한정돼 있다는 것이다. 이미 협력사들의 장비 납기 일정은 상당히 빡빡한 상황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업체들은 투자 계획을 차질 없이 진행하기 위해 경쟁사에 앞서 장비를 확보할 수 있는 긴밀한 협력 관계가 중요해졌다.

세계 반도체 팹 투자 추이. <자료=SEMI>
세계 반도체 팹 투자 추이. <자료=SEMI>

업계는 반도체 장비 공급 부족 문제가 더욱 심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의 반도체 자립화 선언과 칩 수요 증가가 맞물리면서 반도체 팹 증설 분위기가 더욱 뜨거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팻 겔싱어 인텔 CEO가 인텔 파운드리 진출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인텔>
팻 겔싱어 인텔 CEO가 인텔 파운드리 진출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인텔>
평택 P3 현장. <사진=강해령 기자>
평택 P3 현장. <사진=강해령 기자>

최근 인텔이 애리조나에 2개의 신규 팹 투자를 발표했고, TSMC도 애리조나 팹 증설 확정하고 기반 작업에 한창이다. 삼성전자는 평택 2공장에 이어 기반 공사에 박차를 가하는 데다 미국 정책에 부응한 미국 오스틴 신규 파운드리 라인 증설도 검토하고 있다. 향후 몇 년 새 미국에만 대형 파운드리가 네 곳이나 들어설 가능성이 있다.

삼성전자, 인텔, TSMC 외에도 다양한 업체들이 투자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 메모리 업체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도 EUV 설비 투자를 검토 중이고, 중국과 대만 및 국내 파운드리 및 메모리 업계에서도 전례 없는 팹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칩 메이커들은 필요한 장비 들이기에 진땀을 빼고 있고, AMAT, 램리서치는 내년 상반기까지 분기 매출이 최고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는 것으로 안다”면서 “앞으로 핵심 전공정 장비를 선점하는 반도체 업체들이 생산 우위를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