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반도체 전략] 정부, 반도체 R&D·설비투자 파격적인 세액 공제

[K-반도체 전략] 정부, 반도체 R&D·설비투자 파격적인 세액 공제
정부의 반도체 R&D 비용, 시설투자 세제 지원 대책. <자료=산업통상자원부>
정부의 반도체 R&D 비용, 시설투자 세제 지원 대책. <자료=산업통상자원부>

# 정부가 13일 발표한 'K-반도체 전략'은 파격적인 세액 공제 혜택과 지원 정책을 통해 종합 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청사진이다. 반도체 회사가 연구개발(R&D)과 설비투자를 진행할 때 내야 할 세금을 대폭 축소해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것이 골자다.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한 패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국내 반도체 대기업은 물론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술 경쟁력 확보에 나선 중견기업들에도 큰 혜택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다양한 화학 물질을 활용할 수 있도록 수입 규제 장벽을 낮추는 방안 등 보다 세밀한 보완책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3일 정부는 'K-반도체' 전략을 발표하면서 반도체 관련 R&D와 설비투자를 하는 기업에 세제 지원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반도체 R&D를 하는 기업에 최대 50%를, 시설투자를 하는 기업에 최대 16% 공제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기업과 소부장 중견 및 중소기업 모두 해당된다.

정부의 이러한 파격적 세제 지원은 세계 각국에서 반도체 자립화를 위해 발표 중인 반도체 지원책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2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화상회의에서 반도체 웨이퍼를 들어보이고 있다. <AP=연합>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2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화상회의에서 반도체 웨이퍼를 들어보이고 있다. <AP=연합>

미국은 반도체 생산시설 구축시 건당 최대 30억달러(약 3조원)를 지원하고, 2024년까지 투자비의 40% 세액공제를 추진하고 있다. EU는 반도체 생산량 점유율 20%를 목표로 반도체 기업 투자비의 20~40% 보조금을 지원한다. 중국은 2030년까지 반도체 관련 장비, 원자재, 소모품에 한해 아예 관세를 없앴다.

반면에 한국 상황은 상당히 열악했다.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시설투자 세액공제는 대기업 기준 3%에 불과하다. 글로벌 시장에서 반도체로 패권 다툼이 일어난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세제 혜택이 미약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회장은 최근 한 세미나에서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는 정부가 주도해 자국 내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의 지원 수준은 매우 낮았다”고 꼬집었다.

따라서 이번 발표는 업계의 절실한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했다는 평가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지금까지 반도체 지원책에서 눈에 띌만한 세제 지원이 없었던 만큼, 이번 정책은 상당히 파격적”이라며 “대기업 외에도 후발주자로 나선 소부장 업체도 큰 도움이 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반도체 등 설비투자 특별자금 안. <사진=산업통상자원부>
반도체 등 설비투자 특별자금 안. <사진=산업통상자원부>

정부는 세제 지원 외에도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방면으로 반도체 업계를 뒷받침한다. 현재 공급 부족 문제를 겪는 8인치 파운드리를 증설하거나, 소부장 및 패키징 시설 투자를 하는 기업을 위해 1조원 이상 '반도체 등 설비투자 특별자금'을 신설한다.

화학물질 사업장 인허가 패스트트랙. <자료=산업통상자원부>
화학물질 사업장 인허가 패스트트랙. <자료=산업통상자원부>

걸림돌이 됐던 각종 규제도 완화한다. 화학물질, 고압가스, 온실가스, 전파응용설비 등 반도체 제조시설 설립 시 있었던 규제 장벽을 낮췄다. 한 예로 화학물질 취급시설 인·허가 신속처리 패스트트랙을 도입, 소요기간을 50% 단축한다는 계획이다.

또 주요 반도체 팹이 위치하게 될 경기 용인시, 평택시의 10년치 반도체 용수물량 확보와 함께 전력 인프라 구축 시 정부와 한국전력이 50% 내 공동분담해 지원하기로 했다.

업계는 반도체 기술 개발과 설비 투자에 대한 세액과 규제를 대폭 완화한 것에 환영하는 분위기다. 국내 업체들 외에도 그간 과도한 규제로 국내 투자를 망설였던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현지화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업체들의 발목을 잡는 화학물질 사용 규제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소재를 만들 때 쓰이는 유용한 화학물질이 많지만, 다른 나라에는 없는 환경 규제로 국내에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인·허가 시간을 당기는 것도 좋지만 국내에 들일 수 있는 화학물질 종류가 많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최근 소부장 업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한국형 증거수집제도(K-디스커버리) 제도 중단에 대한 건의도 있었다.

소부장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업계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K-디스커버리 법제화에 대한 언급은 빠져있다”고 밝혔다. 또 그는 “정부가 반도체 소부장 생태계가 열악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대규모 지원책을 만들었지만, K-디스커버리만큼은 정부 기조와 역행한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