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발전은 인류에게 위협일까 기회일까. 그동안 과학기술 발전은 경제, 군사력, 삶의 방식, 사회계급, 문화, 정치 시스템 등 사회적 인자에 대해 적극적이고 지배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더 나아가 과학기술과 관련된 사회적 기능을 각종 체제의 형태로 만들어 제도, 자본, 노동, 지식과 정보 등을 연계해 혁신을 추구해 왔다. 체제의 주요 설계 목적은 과학기술 발전이었고, 혁신정책의 주요 참여자 또한 과학기술계가 중심이 됐다.
지난 3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가 2021년에 가장 주목해야 할 10대 미래기술을 발표했다. MIT는 백신, 인공지능(AI), 정보기술(IT) 기반 콘텐츠, 데이터 신뢰 및 추적, 배터리, 친환경 기술 등이 다가올 우리의 미래 삶을 변화시킬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과학기술 발전이 인간의 삶의 질 또한 풍요롭게 할 것인가. 각종 사회 조사를 통해 유사한 질문을 던진 바 있다. 대답은 반반이다. 과학기술이 줄 발전된 모습에 대한 기대와 그 이면에 있을 수 있는 불안 및 우려가 양가감정(兩價感情)으로 나타났다.
신기술에 대한 이러한 기대와 우려를 사회경제적·환경적 관점으로 분석하고 필요한 대응 정책 마련에 활용하기 위해 '기술영향평가'(Technology Assessment)가 실시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2003년 시범 실시를 시작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중심이 돼 매년 1건 정도 기술영향평가를 수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밀의료 기술, 소셜 로봇, 바이오 인공장기 등의 영향평가가 이뤄졌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모두 고려한 종합 분석을 통해 대응을 마련한다는 본래의 취지와 달리 전문가 중심으로 정부 정책 지원 목적에 집중된 영향평가는 실효성 측면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실시하는 기술영향평가를 보완, 신기술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논의와 논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이 의회 산하 전담 조직 중심으로 시민참여형 기술영향평가 방법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는 점을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즉 개별 기술 분석에 더해 경제, 사회, 정치 등과의 상호작용과 이로 인해 파생되는 정책 의제 등을 포괄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 이렇게 도출된 의제는 의회가 중심이 돼 과학기술계, 경제계, 시민사회 등 다양한 주체가 참여할 수 있는 논쟁 채널로 만들고, 혁신정책 설계를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에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또 기술영향평가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기술영향평가 결과와 정부 중장기계획, 연구개발(R&D) 예산 등 과학기술정책과의 연계성을 제고해야 한다. 특히 R&D 예산을 포함한 범부처 차원의 조정과 다양한 분야 전문가 참여로 필요한 R&D를 촉진해서 과학기술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기술영향평가의 총괄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현재 과학기술 거버넌스 체제는 자문과 총괄 정책 결정·조정 기능이 혼재돼 있다. 자문과 총괄 기능을 전문화해서 각각의 역할에 더욱 충실하도록 거버넌스를 재편하는 방안 검토가 필요하다.
위기관리는 위험 확률과 영향을 낮추고 기회 확률과 영향을 높이는 활동을 의미한다. 이는 과학기술 발전이 위험이 될지 기회가 될지는 우리 사회의 위기 대응 역량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위험 징후는 선제적으로 포착해서 완화 방안 마련에 활용하고 기회 요인은 적극적으로 발굴해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기술영향평가가 본래의 취지대로 미래 과학기술의 위기관리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도록 개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김유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ybkim@naf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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