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자파학회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생활속 전자파 건강영향평가' 보고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자원인 전자파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포비아)을 예방하는 과학적 근거자료가 확립됐다는 의미다.
무선전력전송, 인덕션, 장난감, 모니터 등이 방출하는 중간주파수(IF)와 휴대폰 등 무선 통신기기가 발산하는 무선주파수(RF)가 인체보호 기준을 준수할 경우에는 건강에 대한 영향이 적다는 사실이 동물실험과 역학조사를 통해 입증됐다.
그동안 글로벌 연구기관이 진행하지 않았던 분야에 대해 국내 연구진이 선제적인 실험과 측정으로 입증해 새로운 기준을 도출한 것은 괄목할 만한 성과다. 무선 기술 진화에 발맞춘 지속 연구와 글로벌 공동연구, 공동의 인체보호 기준 수립 등 꾸준한 정책 추진과 관심이 요구된다.
◇IF, 세계 최초 인체영향 측정
생활 속 전자파 건강영향평가 핵심 성과는 IF를 세계 최초로 측정한 부분이다. 연구진은 모니터와 인덕션 등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IF 대역 중 20㎑ 전자파를 이용해 동물 실험을 진행, 인체 영향을 평가했다.
일반 독성과 관련 흰 쥐에 각각 일반인과 직업인의 인체보호 기준에 해당하는 6.25T(마이크로테슬라)와 30T 강도로 90일간 노출해도 암발병과 체중, 혈액 등에 이상 반응이 없음을 확인했다. 12~18개월 장기간 노출 시 중성구와 임파구 등 일부 세포 변화를 관측했으나, 추가 실험결과 유의미한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다.
전자파와 암 연관성을 규명하기 위해 발암 물질과 병행 연구도 진행했다. 연구진은 20㎑ 전자파를 흰쥐(그룹당 20마리)에 6.25T 강도로 하루 8시간씩 주 5일간 14주에 걸쳐 단독 노출했다. 20㎑ 전자파와 유방암 발암물질 DMBA와 병용 노출해 유방암 발병율을 비교·관측했다. 대조군별로 IF 전자파를 단독 노출할 경우와 발암물질과 병행 노출한 경우에 모두 유의미한 발병률 증가를 보이지 않았다. 폐암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을 이용해 실험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전자파가 생식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20㎑ 전자파를 흰쥐에 6.25 T 강도로 1일 8시간씩 임신 5일부터 18일까지 노출했지만, 태자(태아)의 유산, 골격, 내부장기 등과 관련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기형을 관측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IF는 전자제품 확산은 물론이고 무선전력전송기술이 활성화되면서 일상 생활에 보다 광범위하게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의 전자파 안전 인식을 개선할 중요한 연구 결과가 도출된 것으로 평가된다.
◇RF, 다중노출 측정 등 기술 진화 반영
연구진은 통신분야에 사용돼 국제사회에서 비교적 연구가 활발했던 RF 전자파와 관련해서도 국민의 이용행태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연구를 시도했다.
2세대(2G)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CDMA) 주파수와 3세대(3G) W-CDMA 주파수를 동물에 병행 노출한 방식으로 실험을 진행한 것은 국내 연구진이 처음이다.
연구진은 전자파흡수율(SAR) 인체보호 기준인 0.4W/㎏(직업인), 0.08W/㎏(일반인)의 각각 10배와 50에 해당하는 4W/㎏ 강도의 CDMA 주파수를 하나의 흰쥐 그룹에, CDMA·WCDMA 주파수를 또 다른 흰 쥐 그룹에 1일 45분, 주 5일, 8주간 노출했다. 혈청 멜라토닌 T3·T4, 갑상선 자극호르몬 등 호르몬 변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음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생쥐 해마신경세포주를 추출해 신경독성물질인 베타아밀로이드와 835㎒ 주파수(LTE)·1950㎒(3G) 주파수 2W/㎏ 강도에 각각 동시에 노출시켰다. 베타아밀로이드 단독노출은 해마신경세포 증식을 감소시키고 세포 사멸을 증가시켰지만 주파수 단독 또는 동시 노출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일상생활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RFID 주파수인 915㎒ 대역 주파수를 흰 쥐에 2주·4주·8주·16주간 SAR 4W/㎏(인체보호기준 10~50배) 강도로 노출했다. 그 결과 혈청 멜라토닌과 갑상선 자극 호르몬이 일시적으로 변화했지만 영향이 지속적으로 나타나진 않았다.
RF 주파수 인체영향 연구의 경우 안전성을 보다 강하게 입증하기 위해 인체보호 기준을 수십배 이상 상회해도 동물과 세포가 큰 영향을 받지 않음을 확인했다.
◇향후 과제는
연구진은 IF와 RF의 기존 글로벌 연구사례를 광범위하게 수집해 국내 연구와 비교 분석도 진행했다. 동물실험이 인체와 동일하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도 안전을 고려한 '안전계수'를 충분히 적용해 인체보호 기준을 마련했고 실제 기준 내에서는 인체에 영향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IF와 RF 위주로 연구를 진행했지만 서비스 진화에 발맞춰 새롭게 등장하는 주파수에 대응하는 일은 과제다.
5세대(5G) 이동통신을 비롯한 무선충전기, 전자파 이용치료·진단 시스템 등이 활성화되면서 새로운 주파수 대역이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2~5년 등 정례화는 물론이고 국내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글로벌 연구기관과 성과를 적극 공유하며 공조체제를 마련해 가는 일은 과제다.
보고서는 “우리나라도 국제비전리복사방호위원회(ICNRIP)와 국제전기전자기술협회(IEEE) 등 국제기구 협력을 강화하고 국제표준화 활동에 적극 참여해 과학적이고 신뢰성 높은 전자파 안전기준 국제 조화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