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수많은 법칙이 있다. 만유인력처럼 근대 물리학의 출발점이 된 위대한 법칙부터 특별한 인과 관계는 없지만 일상에서 '법칙'으로 통용되는 머피의 법칙까지 우리는 셀 수도 없는 법칙 속에 살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도 누구에게나 익숙한 유명한 법칙이 있다. 바로 인텔 공동 창업자인 고든 무어가 밝힌 '무어의 법칙'이다.
마이크로프로세서 집적도가 24개월마다 두 배 증가한다는 이 법칙은 초기에는 경험적 관찰에 바탕을 둔 전망이었다. 당시 전문가들은 이 전망이 빗나갈 것이라고 여기기도 했다. 무어의 법칙에 따르면 초기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연산 능력이 40년 뒤에는 수억배로 향상되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전망은 수십년 동안 이어지며 반도체 산업 전체를 이끄는 법칙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도 많은 논문이 2010년을 기점으로 무어의 법칙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노 공정이라 불리는 미세 공정으로 진입하면서 회의 어린 전망은 더 분명해졌다. 반도체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트랜지스터의 회로 선폭을 줄여서 집적도를 높이는 것이 초기 무어의 법칙 근간이었기 때문이다. 머리카락 굵기의 1만분의 1에 해당하는 10나노미터보다 가늘게 만들어야 하는 공정을 고려할 때 이러한 예상은 당연했다. 언제가 되든 물리적인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을 것이다.
누구나 잘 아는 '콜럼버스의 달걀' 일화처럼 혁신은 고정 관념을 깨뜨릴 때 탄생한다. 이미 만들어진 길을 따라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첫 길을 여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반도체 업계 역시 고정 관념을 전환시키는 새로운 시도로 무어의 법칙을 이어 가고 있다.
그 시도 가운데 하나로 집적도와 성능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솔루션을 도입했다. 평면에서 선폭을 줄이는 데 한계에 이르자 프로세서 구조를 입체화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다. 또 회로 선폭이 미세할수록 많이 발생하는 누설 전류를 줄이기 위해 신소재를 적용했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주기율표상의 모든 원소를 소진할 때까지 인텔은 무어의 법칙을 지속해 갈 것이라고 밝힌 것처럼 업계는 이전에는 고려하지 않은 소재를 활용해서 반도체를 만들려고 한다. 이와 함께 패키징 기술을 혁신, 트랜지스터뿐만 아니라 칩을 모듈처럼 쌓고 연결함으로써 그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혁신 속에서 반도체 산업의 패러다임은 나노 시대를 넘어 '옹스트롬'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 1옹스트롬은 0.1나노미터를 일컫는 단위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물 분자 3~5개가 뭉쳐야 20옹스트롬이라고 하니 얼마나 작은 단위인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인텔은 최근 이 옹스트롬을 2025년 공정 로드맵에 명시하며 새로운 시대를 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는 반도체 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기술을 준비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국내 연구진도 최근 새로운 반도체 소재인 흑린(黑燐)을 활용한 실험에서 4.3옹스트롬 선폭을 띠는 전도성 채널을 만드는 등 옹스트롬 시대는 점차 가시화하고 있다.
과학 법칙이 사물과 현상에 내재하는 보편·필연적인 관계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면 무어의 법칙 같은 기술 법칙은 그 법칙이 여전히 유효한지, 앞으로도 유효할지 지속 도전하고 검증하는 과정이다. 달리 말하면 혁신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법칙으로서 유효성을 유지할 수 있다. 결국 무어의 법칙이 이어진 기간은 현대 기술 혁신을 위해 인류가 노력한 역사와 같다. 이 때문에 그 결과가 더욱 값진 것이 아닐까.
옹스트롬 시대를 기대하는 것은 주기율표의 모든 원소가 소진될 때까지 무어의 법칙을 지속하겠다는 혁신을 환영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의 혁신이 우리 산업과 생활에 가져올,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변화를 환영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이제는 옹스트롬 시대다.
권명숙 인텔코리아 대표 ms.kwon@int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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