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부로 인사발령을 받아 '일본'을 담당한 지 1개월여가 지났다. 요미우리·산케이·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NHK 등 주요 일본 매체가 자국에 보도한 최신 뉴스를 확인, 우리나라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관련 기사에서 강한 적대감을 보이는 댓글 반응에 시쳇말로 '현타'(현실을 자각하는 때)가 오기도 한다.
“쪽×이 나라 뉴스는 관심 없다. 올리지 마라.”(djsh****) “일본에 관심 끄자~!!”(kdyy****) “일본 뉴스는 내보내지 마라. 일진 ×진다.”(icto****) “기×기가 일본 소식은 빨리 올리네. 자국이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지?”(pili****)
최근 게재한 기사에 달린 댓글의 일부다. 어느 정도 예상과 함께 각오는 했지만 상당한 비난 수위에 적잖이 놀랐다. 마치 일본어를 제2 외국어로 선택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친일파'를 비롯한 거친 별명이 줄줄이 붙던 고등학교 학창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든다. 물론 한국과 일본의 특수한 관계를 생각하면 이 같은 반응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일본' 소식을 전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세계 3위 경제 대국인 일본이 우리나라와 경제, 산업, 사회, 과학,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불가분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나 군사 행동을 비롯한 움직임은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자국 내 실패에 따른 비난 여론을 '한국 때리기'로 덮으려는 정치인의 존재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난 2019년 아베 신조 정권이 우리나라를 상대로 기습 단행한 3대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규제가 대표 사례다. 일본 정부의 움직임을 처음 보도한 곳은 산케이를 비롯한 현지 매체다. 당시 우리 정부와 언론은 이를 빠르게 확인하고 지난 2년 동안 국산화와 공급망 대체에 주력, 겨우 위기를 넘겼다. 일본 현지 사정에 눈을 감고 있었다면 한국 경제와 산업계는 지금쯤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1590년 일본에 통신사로 파견된 황윤길은 일본이 많은 병선을 준비하고 있으니 침략에 대비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반면에 김성일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생김새가 보잘것없어 공격 가능성이 옅다고 보고했다. 당시 일본을 얕보고 있던 조선 조정은 김성일이 내놓은 의견에 무게를 뒀다. 일본은 2년 뒤인 1592년에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우리가 일본을 과소평가하고 실체로부터 눈을 돌리는 악수를 둔 것이 결국 최악의 전란으로 이어졌다.
일본과 관련한 역사가 처절한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일본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조건적 적개심이나 근거 없는 우월감은 국제 정세와 우리 위치를 냉철하게 파악하는 데 장애물로 작용할 뿐이다. 일본을 한층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