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조원대 비트코인 세탁을 시도한 범죄자가 억만장자 래퍼로 활동한 사실이 드러나 화제가 되고 있다.
8일(현지 시간) 미국 법무부가 6년 전 해킹으로 얻은 한화 5조원에 달하는 암호화폐(가상화폐)를 ‘세탁’하려고 한 혐의로 미국인 부부를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일리야 리히텐슈타인(34)과 그의 아내 헤더 모건(31)으로부터 미 법무부가 압수한 비트코인은 9만 4000여 개로, 가치는 36억 달러(약 4조 3000억원)에 달한다.
이들 부부는 2016년 홍콩 암호화폐 거래소 비트파이넥스(Bitfinex)에서 해킹으로 훔친 11만 9754개 비트코인을 세탁하려다 덜미를 붙잡혔다. 미 법무부는 이들이 훔친 비트코인이 당시 7100만달러(약 849억원) 어치였으나, 현재는 가격이 올라 약 45억 달러(약 5조4000억원)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사상 최대 규모의 금융 압류다.
범죄를 저지른 부부는 미국에서 암호화폐 전문가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벤처캐피탈(VC) ‘디맨드패스’와 암호화폐 지갑 ‘엔드패스’ 등 창업에 관여했다고 자신들을 포장했다.
미 법무부가 공개한 문서에 따르면, 아내 모건의 또 다른 이름은 ‘래즐칸(RAZZLEKHAN)’. 스스로를 사이버 범죄와 싸우는 ‘월가의 악어’라고 표현했다. 사운드클라우드 프로필에 따르면, 그는 약자를 응원하고, 중동의 소수층과 사회부적응자들을 응원하는 목소리를 내겠다고 했으나 실체는 수조원의 훔친 비트코인을 세탁하려 한 범죄자였다.
모건의 랩을 접한 누리꾼들은 “신은 분명 이정도 실력을 가진 래퍼에게 ‘억만장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조롱했다. 랩에는 “전 세계 암시장. 내가 잠입한 곳도 있지”라는 가사가 있는데, 이는 모두 사실이었다.
모건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활발하게 활동해 아직까지 미처 지우지 못한 동영상들이 온라인을 떠돌고 있다. 틱톡 계정에서는 자신이 “외부 자금, 연고없이 수십억 달러 사업을 구축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포브스에는 자신을 경제학자라고 소개하며 경제관련 기고문을 실기도 했다. 그가 자랑한 돈은 훔친 돈이다.
미 법무부는 최초 해킹의 배후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으며 수사를 계속한다고 전했다. 부부는 비트파이넥스를 해킹한 혐의로는 기소되지 않았다. 유죄가 인정되면 돈세탁 혐의로 최장 20년, 미 정부를 기만한 혐의로 최장 5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가능성이 높다.
한편, CNBC는 부부가 인근 병원에 배아를 몇개를 냉동 보존했다고 10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이들이 체포된 곳은 뉴욕시 맨해튼. 부부는 변호사를 통해 "모건이 자궁내막증을 앓고 있어 체외수정을 통해서만 임신이 가능하다. 가정을 꾸리기 위해 냉동배아를 병원에 보관하고 있다"고 밝히며 자신들은 도주 가능성이 낮다고 적극 주장하고 있다.
전자신문인터넷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