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트리온이 26일로 창립 20주년을 맞는다. 대우그룹 해체로 실직한 서정진 명예회장이 생명공학과 바이오시밀러 산업 성장을 예측하고 창업한 일화는 유명하다. 맨주먹으로 시작해 20년도 안 돼 대기업으로 성장한 셀트리온이 걸어온 길은 한국 바이오의약 산업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약품위탁생산(CMO)에서 2세대 항체 바이오시밀러 개발까지 도전적 길을 걸어온 셀트리온은 향후 20년 글로벌 빅파마(거대제약사)로 새 여정을 시작한다.
◇위기를 기회로…셀트리온 20년 도전의 역사

셀트리온 20년은 '도전'으로 요약된다. 초기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했고, CMO에서 글로벌 바이오시밀러 기업으로 체질을 전환하는 등 길지 않은 기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셀트리온은 창립 직후인 2002년 6월 미국 백스젠과 협력해 VCI(VaxGen-Celltrion Incorporation)를 설립하고 이듬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파일럿 플랜트를 건설했다. 셀트리온은 직원들을 VCI에 파견해 바이오의약품 생산과 품질 관리 노하우를 익혔다. VCI는 셀트리온 사업 초기 1공장 가동에 필요한 기술과 노하우를 사전에 축적할 수 있는 기술연수원 역할을 했다.
2004년 에이즈 백신 개발 프로젝트 3상 임상 시험이 모두 실패하며 첫 번째 위기를 맞았지만, 셀트리온은 오히려 투자를 확대하며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일반적으로 제약회사들은 연구개발(R&D)을 먼저 시작해 의약품 판매허가를 받고 생산 능력을 확대하지만 셀트리온은 이를 반대로 수행했다. 먼저 생산 설비를 갖춘 후 CMO 사업을 통해 선진 기술을 익히고 노하우를 축적해 의약품 개발에 나서는 역발상이었다.
2007년 12월 아시아 최초로 FDA의 설비 승인을 획득하는 등 글로벌 수준 생산 설비를 먼저 갖추자 글로벌 제약회사의 주문이 밀려왔다. 품질 기준에 이상이 없는 멀쩡한 제품도 생산 공정에서 오염 발생 가능성이 발견되면 가차 없이 폐기하는 등 엄격한 관리로 고객 신뢰를 쌓았다.
2세대 항체 바이오시밀러 의약품 개발에 뛰어든 것은 셀트리온 역사를 바꾼 중대한 계기였다. 2세대 항체 바이오시밀러는 1세대 단백질 바이오시밀러와 달리 분자구조가 복잡해 고도의 바이오기술이 없으면 개발이 어렵고 막대한 글로벌 임상비용이 필요했다.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본격적으로 돌입한 셀트리온은 2011년까지 항체 바이오시밀러 램시마 글로벌 임상 시험을 진행하며 노하우를 쌓았다. 셀트리온은 램시마 개발 과정에서 △생소한 바이오시밀러 개념 △생명공학 분야에서 낮은 국가 지명도와 기업 인지도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일부 국가의 비협조적인 태도 △까다로운 임상 환자 모집 등 수많은 난제를 뚫었다.
전사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세계 곳곳에서 직접 임상 환자를 모집했고 임상 1상과 3상을 동시에 진행하는 등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참신한 임상 설계 전략을 세웠다. 결국 램시마는 2012년 한국, 2013년 유럽, 2016년 미국에서 판매허가를 받아내며 글로벌 시장에서 항체 바이오시밀러 역사를 새로 썼다.

램시마는 2015년 유럽 시장에 본격 진출하며 판매 시작 9개월 만에 처방 환자 수가 6만명을 넘어서고, 시장점유율 30%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셀트리온은 2015년 의약품 수출로 '3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이는 한국 제약바이오산업 역사상 최초였다.
2016년 11월엔 세계 최초 혈액암 항암제 바이오시밀러인 트룩시마 한국 판매 허가를 받은 데 이어 2017년 2월 유럽 EMA 판매 허가를 획득했고, 2018년 11월에는 미국 FDA 판매 허가를 획득했다. 유방암 치료용 항체 바이오시밀러 허쥬마도 각각 2018년 2월과 12월 유럽 EMA와 미국 FDA 판매 허가를 획득했다.
램시마·트룩시마·허쥬마로 구성된 셀트리온 주력 항체 바이오시밀러 제품들은 안정적인 점유율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꾸준히 견조한 매출을 기록 중이다.
2021년 2월 코로나19 치료제 렉키로나 개발에 착수한 지 1년 6개월여 만에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식품목허가를 획득한 것도 셀트리온 개발 경쟁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렉키로나는 2021년 11월 유럽에서도 정식 품목허가를 획득하며 유럽 규제기관 품목허가를 획득한 국내 최초 항체 신약 지위를 확보했다. 글로벌 임상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곳은 물론 까다로운 유럽 규제 당국 심사를 통과하며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개발 능력을 증명한 것이다.
셀트리온은 흡입형 코로나19 칵테일 항체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내며 올해 2월 보스니아, 세르비아, 북마케도니아 3개국에 임상 3상 임상시험계획(IND)을 제출했다. 흡입형 항체치료제는 폐에 직접 항체를 전달하기 때문에 적은 양의 항체로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환자 스스로 흡입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에 접근성도 높아 코로나19 팬데믹을 종식 시킬 다크호스로 꼽힌다.

◇임상 3상 진입한 파이프라인만 5개…“2030년까지 매년 1개 이상 허가”
셀트리온은 2022년 기준, 임상 3상에 진입한 항체 바이오시밀러 파이프라인만 5개를 가지고 있다. 셀트리온은 창립 이후 지금까지 4개 바이오시밀러를 내놨는데 이보다 많은 제품을 출시 목전에 두고 있다. 결장직장암 치료제 '아바스틴' 바이오시밀러인 CT-P16는 2021년 10월 한국, 미국, 유럽 허가 신청을 완료했다. 두드러기 치료제 CT-P39(졸레어 바이오시밀러), 골다공증 치료제 CT-P41(프롤리아 바이오시밀러), 안과질환 치료제 CT-P42(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CT-P43(스텔라라 바이오시밀러) 등이 2020년 7월부터 2021년 2월 사이 모두 글로벌 임상 3상에 돌입했다.
2021년 12월에는 류마티스 치료제 '악템라' 바이오시밀러 CT-P47 임상 1상을 개시하며 파이프라인을 추가했다. '악템라'는 최근 중증 또는 위중증 코로나19 환자 치료에도 쓰이는 등 적응증을 넓힌 제품이다.
이 밖에 항체 신약 2종 'CT-P27(유행성·계절성 독감 임상 2상)' 'CT-P63(코로나19 감염증, 임상 1상)'과 케미컬 신약 'CT-G20(비후성심근증 임상 1상)을 개발하고 있다.
셀트리온은 2030년까지 매년 1개 이상 바이오시밀러 제품 허가를 받겠다는 계획이다. 자가면역질환과 항암제가 주력인 제품군을 확대해 적응증을 다양화하는 등 포트폴리오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셀트리온은 창립 30주년을 전후해 글로벌 빅파마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다. 서정진 셀트리온 명예회장은 지난해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 이사회 의장직을 물러나며 “2030년까지 (글로벌 빅파마) 10위권까지는 가자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은퇴와 동시에 셀트리온 그룹의 미래 목표를 던진 것이다.
셀트리온은 최근 외국 선진 바이오 기업들과 교류하며 신규 성장동력 확보에 힘쓰고 있다. 셀트리온은 2020년 6월 영국 ADC 개발사 익수다 테라퓨틱스에 지분을 투자, ADC 신약 파이프라인 확보했다. 2021년 8월엔 미국 트라이링크 바이오테크놀로지와 계약을 맺고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 플랫폼 기술 확보에 나서는 등 글로벌 빅파마로 성장하기 위한 동력을 꾸준히 쌓는 중이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바이오의약품 산업에서는 세계 제일 기술을 가진 기업들만 살아남는다”면서 “셀트리온 기업경쟁력 핵심가치는 '세계 제일주의'라고 강조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