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칼럼]축소지향 반도체, 확대지향 대역폭

이재성 고려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 한국전자파학회 부회장
이재성 고려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 한국전자파학회 부회장

반도체 대란이라고들 한다. 반도체 품귀 현상으로 신차 출고가 늦어지고, 이에 따라 일부 국가에서는 중고차 가격이 역주행하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런 예에서 드러나듯 반도체는 우리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생활의 일부로 깊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반도체라 일컫는 그 실체는 대부분 반도체를 이용해서 제작되는 트랜지스터 소자를 의미한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하겠다. 지금 우리 주변의 1m 반경 내에 위치한 트랜지스터 수효는 얼마나 될까. 간단한 어림을 해보겠다. 최근 출시되는 고성능 반도체 칩은 이미 100억개 이상의 트랜지스터를 포함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칩의 경우 내장된 트랜지스터 수효가 쉽게 1000억개를 넘어선다. 따라서 스마트폰이나 PC를 통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수천억 혹은 수조개의 트랜지스터가 당신을 마주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세계 인구의 백 배, 천 배에 이르는 규모다.

우리는 트랜지스터 홍수 속에 살고 있다. 현대 일상에서 이제 물이나 산소와 비슷한 반열에 오른 트랜지스터는 불과 75년 전 이 세상에 모습을 나타냈다. 1947년에 미국 벨 연구소에서 발명된 트랜지스터는 고유의 특성인 신호 증폭뿐만 아니라 신호 발생, 더 나아가 연산 및 저장 기능도 제공한다. 팔방미인이 따로 없다.

길지 않은 역사이지만 그 시간 동안 트랜지스터 성능은 꾸준히, 획기적으로 개선돼 왔다. 트랜지스터 성능 개선 법칙은 의외로 단순하다. 그 크기를 작게 하면 성능이 향상된다. 최근에는 크기 축소 외에 새로운 구조와 재료 도입도 함께 고려되고 있지만 반세기 이상 트랜지스터 성능 개선의 주요 견인차는 역시 스케일링이라 불리는 크기 축소였다.

반도체 칩 상에 집적된 트랜지스터의 개수가 대략 2년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도 결국 크기가 축소되는 경향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잠깐 경제적인 측면을 살펴보자. 작아지는 크기로 인해 같은 면적 상에 집적된 개수가 증가한다는 것은 곧 트랜지스터 단가가 싸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트랜지스터는 성능이 개선될수록 가격이 하락한다. 일반 상식과 배치되는 이 관계가 바로 트랜지스터 성공 신화의 핵심적인 요인이었다. 인류에게는 큰 축복이다.

트랜지스터의 크기 축소는 왜 성능 개선을 가져올까. 전자가 전극 사이를 주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단축되기 때문이다. 그 시간은 얼마나 될까. 반도체 내에서 전자의 속도는 적정한 조건 하에서 초속 100㎞에까지 이를 수 있다. 최신 소자 전극 간 거리를 10㎚(나노미터)로 가정한다면 10조분의 1초라는 답이 나온다. 주파수로 환산하면 10㎔다. 물론 실제로는 다른 영향에 의해 이보다 작은 값을 가지지만 최신 트랜지스터는 실제로 1㎔에 가까운 동작 주파수를 보인다.

이렇게 높은 동작 주파수는 실용적 관점에서 얼마나 유용할까. 우리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무선 통신 응용을 살펴보자. 섀넌의 법칙에 따르면 통신환경에서 데이터 전송 속도는 확보된 대역폭에 비례하게 된다. 주파수가 높으면 넓은 대역폭을 쉽게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주파수 향상은 우리가 매일 그토록 갈망하는 데이터 전송 속도의 향상을 가져올 수 있다.

요즘 자주 회자되는 차세대 6세대(6G) 이동통신에서 100㎓가 넘는 높은 주파수 사용이 고려되고 있다. 이 주파수 대역이 제공하는 광활한 대역폭을 타고 초고속으로 전달되는 데이터는 상상만으로도 짜릿하다. 그러나 회의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5G 통신에서 6㎓ 이하 주파수 대역과 함께 제공될 것으로 기대됐던 28㎓ 대역의 활용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이 그 근거로 제시되곤 한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자연을 설득해서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이 공학이다. 넓은 대역폭이 빠른 데이터 전송에 이른다는 사실은 자연 영역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의 구현은 공학 영역이다. 다른 여느 기술 개발 과정과 마찬가지로 난관은 극복되고 100㎓ 이상 대역의 통신 시스템은 상용화될 것이다. 단지 소요 기간이 관건이다. 이는 재정적 지원과 관심, 공학자의 열의가 결정할 것이다.

이재성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한국전자파학회 부회장 jsrieh@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