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차기정부에 바란다

벤처기업협회를 비롯한 혁신벤처업계는 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자유·개방·공정·상생을 키워드로 한 '기업가정신이 충만한 혁신강국'이라는 제목의 정책보고서를 각 정당 대표와 주요 대통령 후보들에게 전달한 바 있다. 이에 양대 정당은 예상보다 많은 개별 정책을 대통령 후보공약으로 공식 채택해 발표했는데 아마도 대한민국의 사회·경제적 발전을 위해서는 우리 사회 곳곳의 전근대적인 시스템을 걷어내야 하고, 그 중심에 혁신기업들이 자리해야 한다는 총론에 여야 모두 큰 이견이 없는 듯하다.

풍요로운 성장과 공정한 분배, 따뜻한 복지가 선순환하고 국민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며 청년들은 다양한 삶의 가치를 추구하며 미래를 꿈꾸는 나라. 아마도 이는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이상적인 국가 모습이자 우리 헌법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변혁기를 맞고 있는 지금 글로벌 경쟁에서 낙오하지 않고 각 후보 공약처럼 세계 3강, 5강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국가 운영 전반에 걸친 혁신과 이에 기반한 원칙 수립이 필요하다.

적어도 혁신산업 영역에서 한국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는 행정부, 입법부를 포함한 공공 영역이다. 많은 국내외 전문가들이 한국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는 이유로 기술경쟁력이 아니라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수용성과 관련 제도의 문제를 지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적어도 벤처생태계는 민간 주도여야 한다는 구호는 어느 정부를 가리지 않고 표방해 왔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정부 주도의 관치가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고, 민간시장에의 국가 간섭은 오히려 그 강도가 더해 가는 느낌이다. 가위 국가 후견주의에 가깝다.

급격한 기술 및 산업 발전 속도와 이에 따르는 국민 생활양식 변화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마치 화석같이 존재하는 과거 법령·제도로 혁신기업을 재단하려 한다. 심지어 새롭게 만들어지는 규칙조차도 현장과 유리된 채로 급조해서 시행하기 일쑤다.

기업 현장에서 들리는 '사무관 밑에 기업인'이라는 자조와 각자의 정파적 가치만으로 기업인과 관련 법률을 바라보는 입법부의 모습도 글로벌 혁신전쟁에 임하고 있는 혁신기업가들을 좌절하게 한다.

이는 과거 한국의 산업사회 성공 신화에 의한 관치주의의 자가증식일 수도 있고 과거 유교적 사농공상의 잔재일 수도 있다. 어쩌면 혹자가 이야기하는 공공권력과 시장권력 간 대결일 수도 있겠다.

한국은 규제 공화국이라는 국내외 비판에도 기존 규제의 개혁이 더디고, 오히려 지금도 진흥법, 발전법이라는 이름의 각종 규제가 쏟아지며 공공부문의 비대화와 권한 강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차마 믿고 싶지 않지만 그 이유가 산업 부처와 관련 전통산업 간의 거대한 이익 카르텔 발현이라는 지적도 농담으로만은 들리지 않는다.

이러한 불합리한 규제와 구태의연한 제도적 장벽을 방기하고 각종 펀드 등 재정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야말로 기존 카르텔을 깨뜨리지 않고 정책적 생색을 낼 수 있는 관치주의의 대표적 사례다. 복통 환자에게 통증의 원인을 묻지 않고 빨간약을 발라 주는 의사와 다름이 없다.

지난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벤처인들과 관련 학계 인사 등이 참여한 '규제개혁당'이 창당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당등록 규제'로 현실정치의 벽을 넘지는 못했으나 아마도 산업 현장의 모순을 접해 본 수백만명의 사람들은 마음속의 당원이 되었을 것이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차기 대통령에게 바란다. 대전환 시대에 요구되는 차기 리더십은 혁신의 지휘자다. 이를 위해서는 진정으로 민간 중심의 혁신생태계가 자리잡아야 하고, 그 과정도 철저히 민간 중심이어야 한다. 불행하게도 만약 이번에도 패러다임 전환에 실패한다면 혁신벤처인들은 가상공간에서 제2의 역동적 대한민국을 건설하고 자체적인 거버넌스를 가질지도 모른다. 이미 해외에서는 인공지능(AI) 국회의원이 활동하고 있고 가상국가도 실험되고 있다. 멀지않은 미래다.

이정민 벤처기업협회 사무국장
이정민 벤처기업협회 사무국장

이정민 벤처기업협회 사무국장 jimmylee@kov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