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의 섹시 댄스.' 얼마 전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던 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우연히 발견한 게시물 제목이다. '대통령'과 '섹시 댄스'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단어가 한 문장에 쓰인 것에 호기심이 일었다.
사실 여타 정치인처럼 근엄한 표정을 지은 중년 남자의 평범한 춤사위 수준을 예상했다. 하지만 섬네일을 터치하자 검은 타이츠 바지에 높은 하이힐을 신고 상체를 드러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무아지경의 섹시 댄스를 선보이고 있었다. 시쳇말로 '이왜진'(이게 왜 진짜)이라는 탄성과 웃음이 절로 나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직 코미디언이다. 해당 게시물도 코미디언 시절에 한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한 것이라고 했다. 2015년 방영된 한 드라마에 대통령역을 맡아 큰 인기를 얻은 그는 2019년 대선에 출마, 73.2% 득표율로 대권을 거머쥐었다.
당시 국제사회 일각에서는 코미디언 경력만으로 그를 평가절하했다. 정치적 능력이 아니라 단순한 대중 인기만으로 당선됐다고 봤다. 한국에서도 최근 한 유명인이 SNS에 “코미디언을 대통령으로 뽑은 우크라이나 국민의 마음도 헤아릴 순 있다. 오죽했으면 차라리 웃겨 주기라도 하라는 주문이겠지”라는 글을 올렸다가 수많은 비난이 쏟아지자 사과하고 게시물을 삭제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현재 치르고 있는 전란에서 빼어난 지도력을 보이며 재평가받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거듭되는 암살 시도에도 자국을 떠나지 않고 수도 키이우에서 대 러시아 투쟁을 진두지휘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자격이 과거 경력이 아니라 자국민의 일상과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데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셈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제20대 대선이 치러지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간발의 차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윤 당선인은 지난 13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선을 마치고 본격적 차기 정부 구성 작업에 들어갔다.
검찰총장 출신인 윤 당선인은 정치 입문 8개월 만에 대권을 쥐었다. 헌정 사상 첫 국회의원 경력이 없는 '0선' 당선인이다. 이는 앞으로 국민이 차기 정부를 평가하는데 보이지 않는 잣대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훌륭한 리더십으로 '코미디언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뗀 젤렌스키 대통령처럼 윤 당선인 스스로 산적한 국정 과제 속에서 대통령 자격을 증명할 수밖에 없다.
윤 당선인은 당선 직후 “대통령직을 정식으로 맡게 되면 헌법정신을 존중하고 의회를 존중하고 야당과 협치하면서 국민을 잘 모시도록 하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를 반드시 실천해서 임기 5년간 국민에게 사랑과 존경은 물론 역대 가장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길 기대한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