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계 "전쟁 터졌는데 '통상 이관' 장수 바꾸자는 말"

새 정부 '통상 업무 이관' 논란
업계 “기업 현실 몰라” 쓴소리
경제·안보 직결 '전문화' 시급
대통령 직속 컨트롤타워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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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산업계가 새 정부의 통상 업무 이관 논란에 “기업과 산업 현실을 모르는 탁상공론”이라며 일침을 가했다. 반도체 공급망 대란, 첨단 기술 유출 등 소리 없는 산업전쟁의 포탄이 쏟아지는데도 너무 한가하다고 비판했다. 10여년간 축적한 산업 중심 통상 업무를 더욱 전문화하는 게 '발등의 불'이라고 지적했다.

반도체 업계 "전쟁 터졌는데 '통상 이관' 장수 바꾸자는 말"

이서규 한국팹리스연합 회장은 “세계 산업 구조가 점점 복잡해지면서 글로벌 수출입, 관세, 물류 등 아우르는 통상 업무의 전문화가 시급하다”면서 “기업과 밀접하게 소통하는 조직이 통상 업무를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 장비사의 한 대표도 “통상은 국가 반도체 육성 산업전략과 함께 가는 게 정석”이라며 “산업정책을 잘 아는 부처가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외교부로 통상 업무를 이전하는 방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산업계는 통상이 기업 생존뿐만 아니라 국가 안보와 직결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근 미-중 무역 갈등과 반도체 패권 전쟁, 일본의 수출 규제와 반도체 공급난 등을 줄줄이 겪었기 때문이다. 작년 미국 상무부에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에 영업비밀에 가까운 정보를 요구한 것도 위기감을 더한다. 반도체 공급난으로 자동차·가전 등 산업 전반이 타격을 받은 것도 한몫했다.

반도체 업계 "전쟁 터졌는데 '통상 이관' 장수 바꾸자는 말"

수출 20%를 차지하는 반도체가 흔들리면 한국경제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통상을 산업 중심이 아니라 외교 중심으로 재편하는 건 시대착오적 발상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 통상 업무는 1998년 통상산업부(현 산업부)에서 외교통상부로 옮겼다. 이후 2013년 현재 산업부로 다시 이관됐다. 박재근 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한양대 교수)은 “산업부가 (통상을 맡으며) 지금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전문성을 축적했다”며 “이것을 외교부로 넘기면 공백이 불가피한 가운데 급변하는 시장에서 우리 기업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산업통상부와 외교부 간 협력을 확대, 세계 반도체 전쟁에서 생존할 강력한 거버넌스도 요구했다. 산업 중심의 통상 기능에 국가 외교 역량을 보태 반도체 패권 다툼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산업부와 외교부 간 업무 조율과 협력을 진두지휘할 '컨트롤타워'가 대안으로 제시됐다. 기존 기획재정부 정책조정국이 선임 부처 격으로 비슷한 업무를 맡아 왔다. 그러나 잦은 정부 조직 개편으로 입지가 줄어들었다는 평가다. 반도체 제조사 관계자는 “(컨트롤타워를) 단순히 부처에 두지 말고 대통령 직속 위원회와 같은 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경제·안보 측면에서 통상 기능을 가동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학회장도 “기업 등 민간 참여를 대폭 늘린 민관합동위원회 형태로 이뤄져야 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과' 수준인 반도체·디스플레이 담당을 '국·실'급으로 격상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