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전환의 시대, 산업단지 전환을 준비하자

김정환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자료 한국산업단지공단>
김정환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자료 한국산업단지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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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산업단지 현장에선 기업지원사업 합동 설명회가 열린다. 통상 설명회장이 가득 찰 정도로 기업의 참여 열기가 뜨겁다. 사업 정보를 얻고 상담도 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19 발생 이후 이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온라인 설명회와 메타버스 플랫폼이 역할을 대신한다. 산업단지 산학연 협의체인 미니클러스터의 회원도 이젠 영상회의에 잘 적응하고 있다. 교류와 소통 무대가 온라인으로 바뀌어도 큰 어려움은 없다고 한다. 온라인 회의는 많은 기업에서 일상이 되고 있다.

[ET시론] 전환의 시대, 산업단지 전환을 준비하자

코로나 팬데믹은 '전환 시대'를 앞당겼다. 4차 산업혁명의 디지털 전환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미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빅데이터는 곳곳에 자연스럽게 적용되고 있다. 산업 디지털 전환을 통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려는 각국의 경쟁도 치열하다. 기후 위기와 탄소중립 이슈는 전 세계에 그린 경제로의 전환 숙제를 안겼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영향력도 한층 강화될 것이다. 글로벌 가치사슬(GVC)과 공급망 재편, 자국 우선주의도 확산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촉발한 새 전환 시대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기업·지역·각국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

한국경제는 중요한 전환 시기마다 잘 적응하면서 성장과 도약을 이뤘다. 코로나 사태에서도 제조업과 수출이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다. 코로나 극복을 넘어 새로운 전환 시대에 우리 경제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선 다시 한번 적응과 혁신이 일어야 한다. 위기는 기회라 하지 않았는가. 더 높은 도약을 위해 제조업과 산업단지를 혁신 전환의 무대로 삼아야 한다. 전국의 1257개 산업단지는 우리나라 제조업 생산과 수출의 65%, 고용의 절반을 차지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국가 전략산업의 터전이자 경제성장의 물적 토대였다.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감안하면 전환 시대를 맞기 위한 대응도 제조업과 산업단지에서 이뤄져야 한다.

우선 산업단지의 디지털 전환이 시급하다.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제조업의 디지털 전환과 산업단지의 디지털 전환 환경 구축이다. 먼저 스마트공장이 늘어야 한다. 단순한 생산공정의 디지털화가 아니라 기업 활동 전반에 걸친 스마트화가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공정, 제품, 비즈니스 모델까지 혁신이 일 수 있다. 기업들은 디지털 기술의 융·복합을 통해 사업 전환과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할 수 있다. 첨단기술로 무장한 깨끗한 스마트공장은 청년들이 제조 현장으로 모일 수 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기업이 쉽게 디지털 전환에 나설 수 있는 산업단지 환경을 조성하는 일도 중요하다. 생산 기능에 초점을 둔 기존의 산업단지가 도로·용수·전력이 중요한 기반시설이었다면 다가오는 시대는 기업 혁신 창출을 지원하는 디지털 인프라가 필수다. 스마트 그린 산단 사업은 산업단지의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는 의미있는 시도다. 혁신데이터센터나 표준제조 혁신공정 모듈 등을 통해 제품기획, 설계, 데이터 분석, 컨설팅을 지원하고 있다. 중소기업엔 디지털 인프라를 활용해서 디지털 전환을 앞당기는 기회다. 일례로 창원산업단지의 자동차 조향장치 전문기업 태림산업은 공정혁신 시뮬레이션센터를 통해 제품 개발 속도를 대폭 단축할 수 있었다.

디지털 전환의 열쇠는 데이터에 있다. 우선 유용한 데이터가 수집·저장돼야 한다. 현장 데이터가 측정돼야만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조·에너지 데이터를 똑똑하게 활용하는 것은 기업의 수익 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 디지털 전환은 산업단지의 오랜 난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5세대(G) 이동통신, 센서와 사물인터넷 기술에 기반한 스마트관제센터는 산업단지의 안전과 주차 문제 해결을 지원하고 있다. 산업단지를 한층 안전하고 편리한 공간으로 바꿀 수 있다.

두 번째 산업단지를 친환경 공간으로 전환해야 한다. 산업단지가 더이상 환경오염과 회색빛 공장지대 이미지에 머물러선 안 된다. 탄소 배출은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높여야 한다. 기업이 친환경 공정을 도입하고 친환경 제품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 탄소중립에도 디지털 전환이 도움을 줄 수 있다. 스마트에너지플랫폼 같은 디지털 인프라를 활용하면 효율도 높일 수 있다.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자원순환형 생태산업단지 모델도 확산해야 한다. 유사 업종이 집적된 산업단지의 특성을 잘 활용한다면 에너지·탄소 저감 모범사례는 더 만들 수 있다.

세 번째 청년이 찾는 산업단지로 전환해야 한다. 청년이 찾아오는 일터이자 즐김터, 쉼터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전통산업은 일자리를 창출했지만 이젠 인재가 산업을 창출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산업 현장에서의 일자리 미스매치 해결도 시급하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의 '산업단지별 청년유인력 분석'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체 산업단지 내 청년 근로자 비중은 15.2%로, 인근 지역의 제조업 청년 비중보다 평균 10% 이상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단지가 청년에겐 아직 매력적이지 않은 곳이란 의미다.

여러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어미니티'(Amenity)를 높이는 일이 시급하다. 인재가 성장하고, 기업이 성장하고, 성장기업들이 모인 지역경제가 또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가 돼야 한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 사례를 참고하자. 벤처·창업기업, 쾌적한 지식산업센터와 편리한 출퇴근 교통망, 먹거리와 즐길거리, 편의시설이 많은 산업단지엔 청년이 가득하다. 수도권을 넘어 지방에도 청년들이 선호하는 우수 기업이 늘어야 한다. 자기계발과 성장할 수 있는 교육 여건도 중요하다. 취업 희망자와 재직자 모두를 위한 스마트제조 교육 프로그램, 산학융합지구 등 산·학 협력 생태계를 잘 가꿔야 한다. 청년이 찾는 산업단지에 한국경제 미래가 있다.

농사일이 다 어렵지만 인삼 농사가 가장 어렵다고 한다. 땅은 묵히고, 배수로도 내고, 비옥한 흙으로 가토해야 한다. 그런 후 씨를 뿌려서 묘삼으로 기른다. 삼포어장을 세워 그늘을 만들고, 잡초는 수시로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4년에서 6년을 기다린다. 농부의 땀과 정성이 오랜 기간 이어져야 인삼을 수확할 수 있는 것이다. 산업단지도 마찬가지다. 우리 산업의 텃밭인 산업단지에 꾸준한 투자와 함께 혁신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정성 및 노력이 필요하다. 산업단지가 경제성장의 화수분으로 다시 태어나길 기대해 본다.

김정환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kimjh51@kicox.or.kr

○김정환 이사장은

산업과 에너지 분야 경험이 풍부한 한국산업단지공단의 '지장'(智將)이다. 서울 배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제학과 학사, 미국 미주리대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0년 제33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한 이후 약 30년 동안 관료로 일했다. 지식경제부 지식서비스과장·반도체디스플레이과장, 산업부 산업기술정책관·시스템산업정책관·기획조정실장 등을 역임했다. 2009년에는 대통령실 비상경제상황실 행정관으로 근무하는 등 풍부한 경험을 갖췄다. 2020년 3월부터 산단공 이사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