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권의 에듀포인트]<10>문·이과 융합인재 양성방안은

'융합인재 양성' '문·이과 통합'.

오래전부터 대한민국 고등학교 교육을 둘러싸고 논의된 내용이다. 여기에 “전 세계에서 문·이과를 나누는 나라는 우리나라하고 몇몇 국가밖에 없대” “'이과냐 문과냐'라는 구분은 수학을 잘하면 이과고 못하면 문과 아니냐”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어 왔다.

[신혜권의 에듀포인트]<10>문·이과 융합인재 양성방안은

결국 교육 당국은 2015년 교육과정 개편을 통해 문·이과를 통합했다. 드디어 우리나라도 '문과형이니 이과형이니 하는 이분법적 구분을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수학을 잘하는 문학가, 경영 마인드가 있는 엔지니어 이런 인재가 양성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필자 생각은 표면적이거나 교육부 발표로만 그러했다. 지금 고등학생에게 물으면 “문과, 이과요? 당연히 존재하죠”라는 대답을 1초도 안 돼 듣게 된다. 실제 문과와 이과 학생의 선택 영역이 다르고 대학에서 문과와 이과를 구분하는 상황에서 문과와 이과가 통합됐다는 말은 가슴에 잘 와닿지 않는다.

2015년 교육과정 개편에 따른 문·이과 통합 수능이 2022학년도에 처음 치러졌다. 무엇이 달라진 걸까. 문·이과 구분 없이 수학 30개 문항 가운데 22개는 공통, 8개는 '확률과 통계' '미적분' '기하'에서 하나를 택한다. 그 결과 수학 만점자 가운데 상당수는 이과생이 차지했다. 다시 말해 수학 1등급 가운데 상당수가 이과생이라는 의미다. 물론 교육부가 이러한 수학 성적 분포를 밝힌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육기관은 모두 이렇게 추정한다.

그렇다고 이게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과생에게 인문·사회계열 교차 지원을 허용하고, 문과생에게는 이공계열 지원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수학에 강점이 있는 이과생은 문과생에 비해 좋은 대학에 진학할 기회가 넓어진 셈이다. 문·이과가 철저하게 구분된 학력고사를 본 '꼰대' 세대는 이해가 전혀 안 되는 얘기다. 어찌 됐든 대학 진학 기회를 놓고 보면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느낌이다.

국민의힘 정경희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서울대 인문·사회·예체능 계열 최초 합격자 486명 가운데 44%인 216명이 수학 영역에서 '미적분'이나 '기하'를 택했다. 미적분과 기하를 택했다는 것은 이과생이라는 말이다. 문과생은 통상 '확률과 통계'를 택한다.

자유전공학부 최초 합격생 가운데 94.5%는 이과생이다. 심리학과 88.8%, 지리교육과 71.4%, 영어교육과 62.5%, 경영대 43.1%, 경제학부 44%다. 인문·사회계열 상당수 학과에서 최초 합격생 가운데 이과생이 과반이거나 절반에 육박한다. 서울대만의 얘기는 아니다. 고려대·연세대 등 상당수 대학의 이야기다.

언뜻 '이과형 심리학자·교육자·경영인 등이 나오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아니다. 인문·사회계열에 합격한 이과생은 자신이 원해서 학과를 택한 것이 아니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활용한다. 그래서 택한 학과를 끝까지 전공하지도 않는다. 인문·사회계열에 합격한 상당수 이과생은 반수(재학하면서 재수)를 택한다. 다시 같은 대학교 인기 단과대학인, 예를 들면 의대나 상위권의 다른 대학교 공대·자연대로 옮긴다. 이들 때문에 기회를 잃게 된 문과 학생이 안타까울 뿐이다.

문·이과 융합인재 양성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과거처럼 문과형이니 이과형이니 하는 이런 이분법적 인재 양성은 우리나라를 퇴보시킨다. 그럼 어떻게 가야 할까. 어떻게 해야 사회적으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융합인재를 양성할 수 있을까.

조금은 어려운 얘기지만 무엇보다 대학입학 전형에서 수능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수능은 대학 입학 최저 기준으로만 활용하고 대학 스스로 학생 선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대학은 전공별로 향후 인재로 성장할 소양과 열의가 있는 학생을 선발하면 된다. 대표적으로 소프트웨어특기자전형 등이다. 이 과정에서 교육 당국은 부정행위가 있는지, 사회적 문제가 야기될 요소가 있는지를 감독해서 문제점을 개선하면 된다.

사회적 이슈로 대학입학 전형이 '수시를 줄이고 정시를 늘리는' 분위기다. 일부 정치인은 학력고사를 부활해야 한다는 말도 한다. 다양한 인재가 필요한 시대에 누구나 똑같은, 그저 국어·영어·수학 공부 잘하는 학생만을 배출하자는 말같이 들려 답답하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울 수는 없지 않은가.

미래 인재는 중·고등학교 교과과정 모두를 다 잘하지는 못해도 특정 영역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인재가 필요하다. 그런 인재가 문·이과 구분 없이 필요한 역량을 갖추고, 생각도 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인재가 사회에 꼭 필요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신혜권 이티에듀 대표 hk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