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유럽발 '규제 리스크'가 엄습했다. 유럽 각국이 이르면 오는 2025년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과불화화합물(PFAS)' 사용을 제한하기로 결정하면서 대체재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핵심소재 대란으로 반도체 공급난이 한층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을 비롯한 반도체 수출국의 발빠른 대응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10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유럽연합(EU)이 현재 환경과 생태계,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 PFAS를 규제하기 위한 검토를 진행한다고 보도했다. 유럽의 화학물질규정인 '리치(REACH)'에 해당 규제가 반영되면 앞으로 PFAS의 제조·사용·수입이 제한된다.
PFAS는 높은 안정성과 내구성 등 우수한 화학적 특성 때문에 공업 제품에서 식품 용기까지 다양한 산업에 이용되고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는 웨이퍼에 회로 패턴을 그리는 포토레지스트, 에칭 공정에 사용하는 냉매 등에 투입된다. 제조 장비 내부 배관·밸브 등 여러 용도로도 사용된다. 하지만 '영원한 화학물질'이라 불릴 정도로 분해되지 않는 것과 장기적으로 인체에 축적돼 건강을 해칠 수 있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독일과 네덜란드, 덴마크 등 유럽 5개국은 PFAS의 완전 사용 금지를 제안하고 있다. 닛케이는 이르면 2025년 EU가 PFAS 사용을 제안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이 같은 유럽의 규제 움직임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난의 장기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PFAS가 반도체 산업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데다 대체품을 개발해도 품질에 문제가 없는지, 안정적으로 공급 가능한지 등을 확인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미국 3M은 지난 3월 환경오염을 이유로 PFAS 기반 냉매를 생산하는 벨기에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3M은 반도체 에칭 공정에 사용하는 냉매 시장 1위 기업이다. 당시 한국, 대만 등에서는 반도체 생산 계획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기도 했다.
닛케이는 앞으로 아시아에서도 환경 관련 규제가 강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한국, 대만, 중국 등 아시아 내 반도체 주요 생산국이 유럽의 환경정책을 벤치마크하는 경향이 있어 장기적으로 규제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닛케이는 반도체 산업이 유럽발 규제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공급망 내 주체들이 협력해 PFAS 사용을 제한하거나 대체품을 발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도체 공급난이 2024년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상황에서 규제에 따른 추가 영향을 피하기 위해서는 한발 빠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