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장비 제조에 필요한 첨단 부품의 납품기간(리드타임)이 평시 대비 2배 이상 지연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반도체 장비 수요가 급증하면서 부품 공급 병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장비용 반도체 수급난까지 겹쳐 장비 공급에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 핵심 부품 납품기간이 평시 2~3개월에서 최근 6개월을 넘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미국, 일본, 독일 등에서 생산되는 첨단 부품 납기가 대폭 길어졌다. 첨단 센서와 정밀 온도측정장치, 장비를 제어하는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프로그래머블 로직 컨트롤러(PLC) 장치 등이 병목 현상을 나타난 대표 품목이다. PLC 장치 등 일부 부품은 12개월 넘게 납기가 미뤄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반도체 장비 업체 관계자는 “작년에 주문을 해둬 재고를 확보하지 않은 반도체 장비업체는 사실상 장비 제조가 어려워졌다”면서 “부품 납품기간이 길어지면서 장비 납기일도 더 지연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미국에서 부품을 수입하는 한 테스트 장비 업체는 현지에서 직접 부품을 사들이려 했지만 이마저도 부품사의 재고 부족으로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루미늄, 강철 등 원자재 가격도 급등하면서 반도체 장비용 주물·주조 부품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도체 장비용 부품 수급난은 수요 급증 때문이다. 글로벌 반도체 제조사가 반도체 공급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막대한 설비 투자에 나서면서 반도체 장비 주문이 폭증했다. 기존 수개월 걸리던 장비 납품기간이 2년을 넘는 경우도 허다하다. 장비업계가 수요 급증에 대응, 생산량을 빠르게 늘리면서 전체 부품 재고가 대량 소진됐다. 해외 부품업체가 생산능력을 크게 늘리지 않은 것도 원인이다. 반도체 장비 업체는 설비 투자에 민감하게 대응, 신속한 생산능력 확충에 나섰지만 부품사의 대응은 이보다 늦었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장비사는 클린룸만 갖추면 쉽게 생산능력을 키울 수 있지만 부품사는 신규 인프라를 갖춰야하는 것들이 많다”면서 “부품 업체 입장에서는 대규모 설비 투자에 부담이 있기 때문에 병목 현상이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반도체 장비사가 부품 공급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것도 문제다. 해외 주요 부품사들이 어플라이드, ASML, TEL, 램리서치 등 상위 반도체 장비업체에 먼저 부품을 공급한다는 의미다. 상대적으로 매출이 적은 국내 반도체 장비 업체에 돌아가는 부품 수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반도체 생산의 핵심 요소인 제조 장비 생산에 차질을 빚으면서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 부족은 한층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품을 구하지 못해 반도체 장비 납기가 늦어질수록 반도체 제조사의 설비 투자 속도도 더딜 수밖에 없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반도체 소자 업체와 협력으로 국내 반도체 장비 생태계가 조성된 것처럼 반도체 장비업계가 주도해 장비용 부품 생태계를 키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