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00일이 지난 가운데 국내 기업 10곳 중 7곳은 여전히 법 이해도가 낮아 사실상 대응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법 시행 후 전담인력·조직 구성 등 대응조치를 취한 기업도 20%에 그쳤다. 경제계는 법의 모호성과 경영부담 등 해소를 위해 시행령 개정을 공식 건의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5인 이상 기업 930개사를 대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00일 기업 실태'조사 결과 법을 이해하고 대응이 가능하다고 답한 기업은 전체 30.7%에 불과했다고 15일 밝혔다.
'내용은 알지만 실제 적용 방법은 모른다'고 답한 기업은 전체 33.1%를 차지했고, '대략적으로만 알고 있다'고 답한 비중도 34.1%에 달했다. 조사 대상 기업 68.7%가 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답한 셈이다.
중대재해처벌법 대응 조치여부에 대해서는 응답 기업 63.8%가 '조치사항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조치했다'고 답한 기업은 20.6%에 그쳤으며, 실제 법이 적용되는 50인 이상 기업에서도 이 비중은 28.5%에 불과했다.
기업 조치사항으로는 '안전문화 강화'가 81%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경영진 안전경영 선포(55.5%), 보호장비 확충(53.1%), 전문기관 컨설팅(43.3%) 순으로 나타났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안전보건관리체계 운영 격차도 컸다. 300인 이상 대기업의 경우 86.7%가 안전보건 업무 전담인력을 뒀지만, 중기업(50~299인)과 소기업(5~49인)은 각각 35.8%, 14.4%에 불과했다. 전담부서 설치 역시 대기업은 88.6%가 갖춰졌지만 중기업은 54.6%, 소기업은 26%만이 조직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전보건 예산은 대기업의 경우 1억원 이상 편성한 기업이 61%로 가장 많았다. 중기업은 1000만원 이하가 27.7%, 1000만~3000만원이 21.8%로 다수를 차지했다. 소기업은 1000만원 이하가 47.8%로 가장 많았다.
중대재해처벌법 중 보완이 시급한 규정으로 '고의·중과실 없는 중대재해에 대한 면책규정 신설'(71.3%)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근로자 법적 준수의무 부과'(44.5%)와 '안전보건확보의무 구체화'(37.1%), '원청 책임범위 등 규정 명확화'(34.9%) 등이 뒤따랐다.
정부 정책과제에 대해서는 '업종별 안전매뉴얼 배포'(64.5%)와 '명확한 준수지침'(50.1%), '안전인력 양성'(50.0%)을 핵심정책으로 꼽았다.
경영 불확실성과 부담이 커지면서 개정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16일 법무부, 고용노동부, 환경부 등 관계부처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 관련 경영계 건의서를 관계부처에 전달한다. 국회에도 빠른 시일내 전달할 예정이다.
경총은 우선 경미한 질병도 중대 산업재해로 간주될 수 있는 만큼 직업성 질병자 기준에 중증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또 인과관계 명확성, 사업주 예방가능성, 피해 심각성을 충족하지 못하는 뇌심혈관계질환 사망 등은 법 적용을 하지 않으며 사망자 범위를 시행령에 따른 급성중독 질병자로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경영책임자 대상과 범위가 구체화되도록 시행령에 별도 조문을 신설하고, 중대산업재해 관련 경영책임자 의무내용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죄 확정 없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실만으로 경영책임자에게 안전보건교육 수강을 강제하는 것 역시 과잉제재이며, 시행령에 교육수강 대상 조문 신설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경총은 “법률상 위임근거가 많이 부족해 시행령 개정만으로는 현장 불확실성을 해소하는데 근본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경영책임자 범위와 의무내용 등을 명확히 하고, 과도한 처벌수준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보완입법이 반드시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