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넷플릭스 등 글로벌 콘텐츠제공사업자(CP)의 망 무임승차가 인터넷 생태계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하고 있다. 글로벌 전문가는 글로벌CP가 인터넷 생태계 구성원으로서 수혜자 부담 원칙에 따라, 공정한 이용대가 부담을 통해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미디어정책학회는 9일 '공정하고 자유로운 인터넷생태계:당면과제와 해결방안 모색'을 주제로 세계적 인터넷경제학 전문가인 로슬린 레이튼 포브스 시니어칼럼니스트(덴마크 올보르대 박사)와 조대근 법무법인 광장 전문위원을 초청해 특별대담을 진행했다.
세계 데이터트래픽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구글·넷플릭스의 망 무임승차는 통신사의 망 투자·유지 책임과 의지를 꺾는 '공유지의 비극'을 초래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공정한 투자 재원 확보를 통한 통신 인프라의 안정적 진화를 위해 글로벌 시장의 새로운 인터넷생태계 거래질서 구축이 시급하다.
◇인터넷시장 질서 변화 SKB vs 넷플릭스 소송으로 폭발
김정현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넷플릭스를 통신사로 볼 수 있는지, 양면시장과 같은 경제이론, 피어링·트랜짓 등 인터넷 경제와 관련한 다양한 쟁점을 망라하게 됐다”며 “통신사(ISP)와 CP간 인터넷 트래픽 교환방식에 대한 문제, 망 이용대가와 책임에 관한 문제가 분쟁의 핵심”이라고 진단했다.
인터넷 시장은 과거 텍스트·이미지 위주 양방향 소통에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같이 대용량 데이터트래픽을 발생시키는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기존 거래 질서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레이튼 칼럼니스트는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간 소송은 세계적 관심 불러일으켰고,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느냐가 페어플레이를 결정한다”면서 “넷플릭스가 통신사보다 규모가 큰 거인이 된 상황에서 SK브로드밴드가 (망 이용대가 무임승차에 도전하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비교될 만하다”고 말했다.
구글·넷플릭스는 콘텐츠 시장에서 막강한 시장지배력과 더불어, 자체 통신망을 보유했다는 이유를 들어, 통신망 연결에 대한 전용회선료 등을 포함하는 망 이용대가 자체를 거부한다. 통신사는 데이터트래픽이 폭증하기 시작한 2010년대 초부터 임시 방편으로 망 이용대가 협상을 유보한채 주요 글로벌CP와 망을 연결했지만, 더 이상 폭증하는 데이터트래픽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공정한 망 이용대가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레이튼 칼럼니스트는 “과거 넷플릭스와 통신사간 분쟁에선 전략 등이 공개되지 않았으나, 지금은 재판과정을 통해 많이 공개가되고 있다”며 “다른 통신사도 SK브로드밴드 사례를 보며 합리적 네트워크 비용과 회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된 사건”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망 이용자는 대가를 지불하는 게 정당한 과금 원칙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가 세계 통신사와 글로벌CP의 이해 관계를 대변해 한국에서 일종의 대리전을 펼치고 있다. 양측간 소송전에서 드러난 핵심 과제는 인터넷 시장의 상업적 이용·거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다.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와 소송에서 '이중과금' 논리를 제기했다. 통신사는 소비자로부터 이용요금을 받아 통신망을 유지하는데, CP로부터 망 이용대가를 받는 것은 이중과금에 해당한다는 논리다. 또, 넷플릭스는 자신들이 오픈커넥트(OCA)라는 자체 망을 보유했으므로 통신사와 같은 지위를 보유했으므로, SK브로드밴드와 망을 연결하더라도 피어링 관행에 따라 상호무정산하는게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조 전문위원은 “OCA는 CDN같이 대안적 네트워크가 등장하며 트래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적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며 “피어링과 트랜짓 역시 법률용어가 아닌 네트워크를 연동하는 과정에서 정의된 기술적 용어에 불과하다”고 전제했다.
그는 “넷플릭스가 무료라고 주장하는 피어링은 속성 자체가 아니라, 연결하는 상대방 간에 교환대가가 완전히 일치하진 않더라도 비슷하다고 본 상태에서 서로 대가를 지불하지 않기로한 합의에 불과하다”며 “넷플릭스는 망을 보유하지 않은 일반이용자가 공중인터넷망에 접속해서 요금 내는 액세스(이용)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망 중립성은 망 이용대가와 무관
망 이용대가 논란은 망 중립성과 연계해 콘텐츠 표현의 자유까지 침해할 수 있다는 데까지 발전했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CP는 망 이용대가 부과가 망 중립성을 저해해 경제력이 높은 글로벌CP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해 레이튼 칼럼니스트는 “카드사가 소비자와 가맹점으로부터 수수료를 수취해 인프라를 유지하듯이 통신사는 인터넷망 종단에 위치한 일반 이용자와 CP에 서로다른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아직 200만 DVD 가입자를 보유해 택배요금을 내는 넷플릭스가 누구보다 더 개념을 잘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전문위원은 “망 중립성은 통신사의 지능적 활동, 즉 특정 콘텐츠를 선별해 우선순위를 부여하거나 금지하는 등 활동을 금지하는 원칙”이라며 “망 중립성은 인터넷 생태계의 물리적 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과금' 문제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표현의 자유와 같이 문화적인 부분과 인터넷 망과 인프라 이용이라는 물리적 가치는 완전히 별개로, 망 이용은 경제학의 논리로 바라봐야 공정한 인터넷 생태계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논리다.
레이튼 칼럼니스트는 망 이용대가 무임승차가 오히려 망 중립성을 저해한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넷플릭스는 통신사의 망에 OCA라는 특수한 설비를 설치하고 자신의 콘텐츠를 안정적으로 전송하지만, 디즈니플러스와 같은 다른 CP에는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다”며 “이와 같은 상황이 망 중립성을 위반하고 차별을 유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 전문가는 구글·넷플릭스 등 특정CP의 망 무임승차는 망 중립성 개념을 아예 적용할 수 없다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대용량 트래픽을 유발하는 사업자가 돈을 내지 않는 상황을 방치할 경우에는 통신사 마저도 투자를 하지 않고 인터넷 생태계 경쟁력이 저하될 수 있다.
◇망 무임승차 방지로 공정한 인터넷 생태계 조성
조 전문위원은 “망 이용대가 무임승차는 수익자 부담·비용 유발자 부담 원칙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타인의 자원을 사용한 만큼 부담하는 수평적 공평이 인터넷 시장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과 유럽시장에서는 망 이용관계에서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본격적인 제도 개선 논의가 촉발됐다. 한국 국회는 약 7건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통해 통신사와 CP간 '공정한 망 이용계약 의무' 원칙 법제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레이튼 칼럼니스트는 “한국 규제 당국이 불공정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면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며 “정부의 최소개입이 바람직하나, 넷플릭스가 망 이용대가 관련 중재절차까지 거부한 상황에선 정책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두 전문가는 인터넷 생태계에 대한 공정성 차원에서 구글과 넷플릭스 등 망 이용대가를 내지 않는 거대CP에게 관점의 변화를 촉구했다. 유사한 비즈니스모델을 영위하는 페이스북은 망 이용대가를 내고 있다.
조 전문위원은 “원칙적으로는 상호간 원활한 협상이 바람직하다”면서도 “사업자와 주관부처 전문가 중심으로 지속적인 정책연구 통해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레이튼 칼럼니스트는 “한기업이 인터넷 트래픽의 대부분을 독식하는 현상은 정상적이지 않고 공정하지 않다”며 “한국 사례를 통해 인터넷 생태계의 균형을 이뤄야하고 세계가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
◇조대근 전문위원은
조대근 법무법인 광장 전문위원은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직을 맡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제 4기 인터넷상생발전협의회 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조 위원은 지난해 '인터넷 망 이용의 유상성에 대한 고찰'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해당 논문에서 그는 인터넷제공사업자(ISP)인 SK브로드밴드와 콘텐츠사업자(CP)인 넷플릭스간 소송의 쟁점인 인터넷의 유상성에 관해 논증했다. 그는 인터넷을 처음 고안한 개발자들은 인터넷의 무상성을 고려한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용자들은 인터넷 초기부터 백본 등 공중인터넷망 이용료를 ISP에게 지불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으며 사업자는 운용비 충당을 위해 지역 ISP에게서 백본 이용대가(상호접속료)를 받고 연결을 제공했다는 점을 내세웠다.
◇로슬린 레이튼 포브스 시니어칼럼니스트는
로슬린 레이튼 포브스 시니어칼럼니스트는(덴마크 올보르대학교 기업경제학 박사)는 글로벌 망이용대가 논의를 주도하는 석학이다. 미국 정부 글로벌CP 보편기금 부과에 논리를 제공한 것으로 세계시장에 알려져 있다.
레이튼 박사는 지난 3월 한국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간담회에서 넷플릭스가 오픈커넥트어플라이언스(OCA)로 SK브로드밴드에게 이익을 제공하므로 '빌 앤 킵'(상호무정산)을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바 있다. 양측간 교환 트래픽이 대등하지 않고, OCA는 통신사 비용을 유발하고, 건전한 콘텐츠 제공사업자(CP) 경쟁을 저해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통신사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