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솔루션을 보유한 반도체 엔지니어 그룹에 개발과 영업을 지원하는 '길드' 형식의 공동 상품화 사업을 추진하고자 합니다.”
국내 한 반도체 설계(팹리스) 벤처가 동업자 조합을 뜻하는 '길드' 구성을 표방하고 나서 눈길이 쏠린다. 회사 대 회사가 통상적인 반도체 업계에 개인 또는 소규모 인력 간 협력이 골자인 길드는 생소하다.
주인공은 지2터치. 이 회사는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등 화면에 펜이나 손으로 터치 입력이 가능케 반도체와 센서를 공급하는 팹리스다. 2009년부터 10년 이상 터치 기술을 연구해 지금은 수백억 규모의 수출 기업으로 성장했다.
표주찬 지2터치 대표는 16일 “반도체 업계가 겪고 있는 인력 문제가 고민의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는 산업 성장으로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여기에 최근 반도체가 국가 경제 핵심 산업이자 국가안보로도 인식되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재 확보에 불이 붙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엔지니어에 대한 수요가 늘수록, 중소 팹리스들은 사람 구하기가 더 힘들어진다. 그나마 같이 일하던 인력을 빼앗기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다.
표 대표는 “최근 중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책과 국내 대기업의 설계인력 대규모 흡수 등으로 홀로 성장하기가 매우 어려운 구조가 되고 있다”면서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인력과 조직, 스타트업이 같이 성장하고 상품화를 할 수 있는 협력구조를 만들기 위해 길드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표 대표는 길드가 기존 회사 간 협력과 확연히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완성된 제품을 정해진 단가에 공급하는 것이 일반적인 협력 관계인 반면에 반도체 길드에서는 각 인력과 조직에 맞는 맞춤식 지원을 하게 될 것”이라며 “소규모 ASIC·SOC 설계인력과 스타트업에 부족한 설계, 품질, 소프트웨어에 대한 노하우, 그리고 팹(FAB)과 제조, 구매, 영업에 이르기까지 상품화에 필요한 모든 지원을 제공하는 공동 상품화가 차별점”이라고 말했다.
소규모 인력과 개발사들은 기술과 역량은 가지고 있으나 상품화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고, 또 설계를 완료한다 해도 제품을 제작할 공장을 구하기도 어려운 만큼, 반도체 설계부터 제조까지 경험한 회사가 부족분을 지원, 함께 성장하자는 구상이다.
길드에 참여할 인력풀은 국내 충분할까. 이 같은 의문에 표 대표는 “프리랜서로 일하는 엔지니어나 소규모 설계 그룹이 많이 있다”면서 “이분들은 역량이 뛰어나고 기술적 노하우도 풍부하지만 아이디어가 제품화되고 상품으로 고객에게 전달되기까지의 난관을 겪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표 대표는 길드에 참여하게 되면 각 그룹이 가진 아이디어와 솔루션, 기술에 대한 검토를 공동 진행하고, 협업과 지원이 필요한 분야와 범위를 정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개발자금, 팹 발주, 품질 활동, 소프트웨어 개발, 영업과 판매에 이르기까지 각 참여 인력과 조직에 맞게 지원할 방침이며 상품화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단계별로 필요한 보안 서약, 양해 각서 서명 등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단독이나 공동 특허 등 합리적 방법으로 기술협약을 맺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표 대표는 “상호 간의 이익과 권리를 보호하는 동업 정신이 길드의 기본 원리가 아니겠느냐”며 “지2터치가 쌓은 경험을 토대로 유연하고 자유도 높은 길드 형식 공동 사업을 통해 후원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