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해서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의지해야만 하는 삶은 서럽다. 사랑에 둘러싸여서 적의(敵意)를 마주해 본 일 없는 갓난아기조차 울어야만 배고픔을 달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자립을 위해 노력하고, 여의치 못하면 가족이나 친구에게 기댄다. 국가 역시 다양한 수단을 통해 누구든 홀로 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다.
그러나 '의지해야만 하는 삶'이 국가 차원의 문제로 다가올 땐 기댈 곳은 어디에도 없다. 가난한 나라는 국민의 삶을 챙길 수 없고 힘없는 국가는 수탈의 대상이 되기 쉽다. 필자가 어디에서든 '국가의 제1 덕목은 안보'라고 역설하는 이유다. 수십년에 걸친 국민의 노력으로 대한민국은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이루었다. 글자 그대로 '부국강병'이다. 우리나라는 2019년 세계 7번째로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 인구 5000만명 이상 국가)에 가입했고, 군사력 역시 2017년 세계 12위에서 2020년에는 세계 6위로 올라섰다(GFP 기준).
우리가 할 일은 우리 힘으로 우리를 지키는 자주국방(自主國防)을 완성하는 것이다. 자주국방의 길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둘째는 첨단 국산 무기체계 확보다. 우리 기술, 우리 손으로 만든 KF-21이 시험비행에 성공한 2022년 7월 19일은 바로 첨단 국산 무기체계의 역사적인 발자취를 남긴 날이었다.
KF-21, 한국형 전투기 체계개발 사업은 2015년부터 2028년까지 무려 8조8000억원을 투자해서 F-4와 F-5를 대체하고 기반 전력으로 활용할 전투기를 개발하는 사업이다. 인도네시아와 국제공동 연구개발로 추진하고 한국항공우주(KAI)가 주도하는 가운데 사업비는 우리 정부가 60%, 인도네시아가 20%, 국내 참여 업체가 20%를 각각 분담한다.
'KF-X사업' '보라매사업'으로 불리며 2단계에 걸친 진화적 개발 개념을 적용해 체계개발 및 공대공 무장 능력을 구비하는 Block-Ⅰ, 공대지 무장 능력을 구비하는 Block-Ⅱ로 나누어 개발하고 있다. 한국형전투기는 AESA 레이다, 적외선탐색추적장비(IRST) 등 전자장비를 탑재하고 있다. 미티어(Meteor) 및 AIM-2000의 유럽산 공대공 무장, LJDAM 및 SDB 등 미국산 공대지 무장의 운용 능력을 갖출 예정이다. 또 쌍발엔진을 통해 비행 안정성과 기동 능력을 확보했으며, 저피탐 기술을 적용한 4.5세대급 다목적 전투기로 개발되고 있다.
KF-21에 개인적으로 무한 애정이 있다. 의정활동도 KF-21과 궤를 함께했다. 국방위원회에서 의정활동을 시작하던 2008년은 KF-X 사업에 부정적인 기류가 형성되던 시기였다. 2000년 11월 김대중 대통령의 최신예 국산 전투기 개발 약속을 시작으로 2002년 11월 장기 신규 소요를 결정하며 사업은 첫발을 뗐다. 그러다가 2007년 KDI가 보라매사업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리며 좌초 위기에 몰렸다. 2010년도 예산 심의에서도 KF-X사업 추진 여부는 논란의 대상이었다. 탐색 개발에 진입하기 위한 2010년도 예산 14억원 증액 여부에 당시 김태영 국방부장관조차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당시 국회 국방위원회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회 위원으로서 한 발언이 떠오른다. “해 줍시다. 왜냐하면 이 탐색 개발 자체만 해도 고부가가치가 있는 것이고, 우리 기술력을 향상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 예산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여러 이론이 있을 수 있지만…” “체계 개발로 가지 않더라도 우리의 가치로 계속 남는 것이니까 탐색 개발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요. 10년 동안 계속 숙원사업으로 해 왔는데 이번에도 못하면….”(2010. 11. 20. 국회 국방위원회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회 회의 中).
마침내 2010년 1월 21일 제6차 항공우주산업정책심의회에서 탐색 개발 착수를 승인하며 KF-X 사업은 본궤도에 들어섰다. 이후에도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다. 2015년 국감 당시 필자가 밝혀낸 AESA레이더 등 4대 핵심기술 이전 거부 사태가 대표적이다.
코로나19는 글로벌 공급망에 악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없는 기술을 국산화하고 밤을 낮 삼아 달린 끝에 결국 지난해 4월 한국형전투기 시제 1호기 제작을 완료했다. 이후에는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시제기 출고식(Roll-out)을 진행했고, 각종 지상 시험과 비행시험 준비단계를 거치며 7월 19일 오후 최초비행을 실시했다. 실패의 두려움과 할 수 있겠냐는 비아냥, 우리 스스로 그어놓은 한계와 맞서 싸우며 이뤄낸 우리 군의 쾌거이자 의지의 상징인 셈이다.
한국형 전투기 개발은 본격적인 비행시험 단계에 들어섰다. 개발은 아직 끝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수많은 결함과 난관이 발생할 것이다. 2026년 체계개발 완료까지 총 6대의 시제기로 2000여회의 비행시험을 거쳐야만 한다. 무장 능력을 갖추고 양산을 마무리하는 데에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야만 마침내 우리 손, 우리 기술로 만들어 낸 전투기가 대한민국 공군의 주요 전력으로 자리 잡는다.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불렀을 동요다. 불과 반세기 전 우리 선조들이 비행기를 얼마나 갖고 싶었으면 동요에 담았겠는가. 그 시절 비행기가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는 비행기를 쌕쌕이라고 불렀다. 오스트리아 사람인 이승만 전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코 여사를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으로 착각해 호주댁이 비행기 몇 대를 가지고 왔다는 웃지 못할 일설도 있었다.
KF-21은 우리나라가 기술선도국가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지금껏 우리 영공을 지켜 온 전투기는 모두 외국의 것이었다. KF-21 전력화는 자주국방을 향한 우리의 걸음이 완성을 향해 가고 있다는 신호탄이다. 더구나 항공 분야에서 가장 복합한 전투기 제조 기술 보유는 민간 분야, 항공우주산업, 방위산업에 막대한 파급력을 가져올 것이다.
손에 든 것은 빼앗아도 눈에 든 것은 훔쳐 갈 수 없는 법이다. 당장 필요한 비용보다 첨단기술 확보가 중요한 이유다. 최근 논란이 된 한국형 항공모함 역시 같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지난해 말 한국형 항공모함 예산 삭감 움직임에 강력히 반대하며 올해 예산에 72억원을 반영했다. 국내 방위산업 종사자의 헌신을 기념하기 위해 대한민국 최초의 무기체계인 '대한식 소총' 시범 사격회가 있던 1952년 10월 11일을 '방위산업의 날'로 제정하고 기념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법안 통과를 위해 많은 이의 관심을 바라는 바다.
KF-21 초도비행을 맞아 자주국방을 위해 목숨을 건 선배들에게 한 말씀 올린다. “선배님들, 이제 우리도 납니다. 우리 하늘을 우리 기술로 납니다.”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 intoan429@gmail.com
○…안규백 의원은
전북 고창 출신으로, 성균관대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18~21대 국회의원직을 이어 오고 있으며, 상임위로는 외교안보 분야 전문성을 쌓고 있다. 민주당 전신인 평화민주당 공채 1기로 정치에 입문해서 원내수석부대표, 전략홍보본부장, 서울시당위원장, 사무총장 등을 지냈다.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본부 조직2국장,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 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무본부장을 지내기도 했다. 국회 활동을 하면서 해외 의회와의 친선 교류에도 힘썼다. 20대 국회에선 한·베네수엘라 국회의원 친선협회장, 한·중 국회의원 외교협의회 부회장, 한·노르웨이 국회의원 친선협회 이사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