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거센 반발 속에서 대만을 전격 방문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반도체 협력'을 강조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TSMC의 수장과 만나 미국의 지원 정책과 대미 투자 방향도 논의했다. '반도체 굴기'를 앞세워 빠르게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중국에 맞서 동맹국과 새로운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자국 정부의 노력에 힘을 실어 준 것으로 평가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펠로시 의장은 3일 대만 입법원(의회)에서 차이치창 입법원 부원장을 만나 양국 반도체 협력을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펠로시 의장은 미국 정부가 자국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추진하는 '반도체 지원 플러스 법안'(반도체법)이 양국 산업 협력에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의회는 최근 반도체 생산·연구개발(R&D)에 총 520억달러를 투입하는 반도체법을 통과시켰다. 미국에 반도체 생산 인프라를 구축하는 기업에 총 390억달러 지원, 25% 세액공제 등 혜택을 제공하는 한편 이들 기업의 대 중국 생산·증산 관련 투자를 차단하는 게 핵심이다.
펠로시 의장의 발언은 TSMC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TSMC는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에 반도체를 대량 공급하고 있다. 중국이 수입하는 반도체 칩 가운데 약 10%가 TSMC 제품이다.
미국이 TSMC 생산 거점을 유치하면 자국 반도체 생산성을 단숨에 끌어올릴 수 있다. TSMC가 첨단 미세 선폭 공정을 확보한 것을 고려하면 중국과의 생산 기술 격차도 크게 벌릴 수 있다.
펠로시 의장은 이날 류더인(마크 류) TSMC 회장과도 만났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의 면담 자리에 류 회장이 동석한 형태로 알려졌다. 이보다 앞서 워싱턴포스트(WP)는 펠로시 의장과 류 회장이 반도체법은 물론 미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 확대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두 사람의 만남이 반도체가 미국 경제와 안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TSMC는 2020년 5월 미국 애리조나주에 5㎚ 공정 반도체 공장을 구축하기로 했다. 총 120억달러(약 15조7000억원)가 투입되는 이 공장은 내년 말 완공 예정이다. 미국 반도체법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발효되면 해당 공장의 설비 확대 등에 관한 논의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펠로시 의장은 대만에서 차이잉원 총통 면담, 입법원 방문, 중국 반체제 인사 면담 등 일정을 소화했다. 다음 목적지인 한국에는 4일 밤에 도착, 5일 김진표 국회의장 등과 회담할 예정이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