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구(警句), 비슷한 말로는 격언, 금언이 있다. 어느 인터넷 사전은 이것에 진리나 삶에 대한 느낌이나 사상을 간결하고 날카롭게 표현한 말이라고 풀어 설명하고 있다. 이것들은 나름 공통점이 있다.
대개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실천하기는 힘든 것들이라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힘들지만 따라해 보면 참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 하나다. 다른 하나는 한마디로 소용없거나 오히려 자기 됨에 방해한다는 것이다. 매미 유충의 본디 지향이 매미여야지 나비일 수는 없지 않다는 것이다.
혁신에는 근본적 논쟁거리가 있다. 혁신은 편만하지 않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공간에 따라서 어디는 왕성하고 다른 곳은 그렇지 않다. 소위 클러스터라고 불리는 것도 이런 관찰에서 출발했다.
이런 편중은 기업에도 있다. 어느 기업은 혁신의 배양터 같지만 아무리 불꽃을 틔우려 해도 꺼지는 눅눅한 창고 같은 곳도 있다. 덩치 큰 기존 기업과 스타트업이라고 부르는 기업도 사뭇 차이가 크다.
거버(Gerber)를 보자. 1927년 설립된 이 유서 깊은 기업은 이유식의 대명사다. 원래 통조림 회사를 했던 다니엘 거버는 아픈 어린 딸에게 먹이기 위해 과일과 야채를 삶아 으깨고 있는 아내를 보며 캔에 담아 보관 가능한 간편식을 만들기로 한다. 실상 그의 회사는 비슷한 통조림을 만들고 있던 차였다.
난관은 유통이었다. 인지도도 문제였다. 상표로 생각한 건 아니지만 거버 베이비를 공모한다. 그리고 한 목탄 스케치가 선정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아이 그림이자 소비자 충성도가 가장 높은 상표가 됐다.
굿 하우스키핑(Good Housekeeping)이라는 유서 깊은 잡지에 낸 광고도 인지도에 도움이 된다. 신생아 엄마에겐 자신이 좋아하는 식료품점을 알려주면 스프 6캔을 1달러에 주는 쿠폰을 줬는데 이것도 인지도를 높인다. 그리고 고작 두 달 만에 전국 유통망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한때 프리몬트 통조림 회사로 알려진 기업은 거버로 탈바꿈한다. 그리고 상업용 유아식이라는 새로운 산업을 창조한다. 바로 이런 역사를 가진 백년기업이 거버였다.
이런 거버가 성인용 간편식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한다. 이건 어찌 봐도 그럴듯했다. 생각해 보라. 건강식의 주재료는 야채와 과일일 테다. 이걸 조달하고 가공하는데 일가견을 갖고 있다. 거기다 수천만 명의 바쁜 직장인과 이중 태반은 거버 제품에 익숙한 부모 아닌가.
하지만 결과는 비참하다는 표현 이상으로 비참했다. 성인 입맛에 맞는 새로운 제품 라인이라기보다는 기존 걸쭉한 이유식에 성인용 거버란 상표를 붙여 식료품점의 다른 시렁에 진열한 것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았다. 세 달 정도 지나자 반품이 밀려들게 된다.
누군가는 이런 거버의 다른 역사가 지극히 당연하다고 말한다. 이미 대기업이 된 거버에게는 그런 제품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을 테다. 왜냐하면 대기업이란 이미 잘 하고 있던 걸 더 잘하도록 설계되고 조직된 것이니.
아픈 딸 샐리를 위한 간절함 그리고 정교한 유채 초상화를 제치고 습작 같은 스케치를 택한 반짝임이 가신 그곳은 분명 다른 곳일 테다. 당신이 젊은 시절을 바친 지금 그곳은 어떤가.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