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고객사가 중국산 납품을 거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반도체 팹리스가 설계하더라도 중국 파운드리에서 생산하지 않았다는 '원산지 증명'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제재로 말미암은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탈중국 파운드리'로, 반도체 생산 공급망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전력 반도체 기업 A사는 최근 미국 고객사(부품 제조)로부터 중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원산지 증명서'로 입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반도체 원산지 표시를 계약서에 첨부해야 하는 등 공급 조건이 까다로워졌다. 미국 시장에 반도체를 납품하는 국내 팹리스 B사는 중국 파운드리인 중신궈지(SMIC)의 양산 계획을 철회했다. 미국의 수출 제한 등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7~8월부터 중국 생산 제품을 배제하기 위한 반도체 원산지 증명 요구가 팹리스 업계에 확산되고 있다”면서 “대부분 미국 고객사로, 미국 정부의 중국 반도체 견제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일부는 대만 파운드리 생산지를 'Republic of China'(중화민국) 대신 'Taiwan'(대만)으로 변경해서 원산지를 증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China' 표기 시 미국 공급이 막힐 수 있고 실제 미국 고객사의 요청도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중국산을 피하기 위한 원산지 증명 요구는 미-중 무역 갈등이 본격화할 때부터 있었다. 그러나 특정 부품만 증명하는 등 적용 범위가 제한적이었다. 최근 완제품의 가장 밑단에 있는 반도체까지 원산지 증명을 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반도체 거부 움직임은 국내 팹리스와 파운드리 업계에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팹리스 다수가 삼성전자, DB하이텍, 키파운드리 등 국내 파운드리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제품 양산을 하더라도 대부분 TSMC, UMC 등 대만 파운드리를 이용한다. 이서규 한국팹리스산업협회 회장은 “미국 고객에 대응하기 위해 이용하는 파운드리 공급망이 재편될 가능성도 짙다”면서 “중국 양산 비중이 낮은 우리나라 팹리스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파운드리 병목과 가격 인상에 따라 중국으로 눈을 돌린 팹리스도 한국 및 대만으로 돌아올 공산도 크다. 실제 중국 SMIC의 2분기 지역별 매출을 보면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유럽·북미 비중은 지속 감소세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수출 제한뿐만 아니라 중국산 제품을 배제하려는 행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SMIC의 중국·홍콩 비중은 지속 증가세를 보였다.
[SMIC 지역별 파운드리 매출 비중 변화]
자료 : SMIC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