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참담한 정치 뉴스와 잿빛 경제 전망이 난무한 가운데 한 줄기 빛 같은 낭보가 전해졌다. 바로 조성환 현대모비스 대표가 국제표준화기구(ISO) 차기 회장에 당선됐다는 소식이다.
조 대표는 지난달 22일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린 ISO 총회에서 중국 견제를 뚫고 한국인 최초로 ISO 차기 수장에 당선됐다. 조 대표는 내년부터 '회장 당선자' 신분으로 1년 동안 활동한 후 2024년부터 2년 동안 ISO 회장이자 국제표준 리더 역할을 맡게 된다. 특히 ISO 주요 의사결정 기관인 총회와 이사회 의장으로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나라가 ISO 회장을 배출한 의미는 작지 않다. ISO는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국제전기통신연합(ITU)과 함께 세계 3대 표준화기구로 꼽힌다. 전기기술과 통신을 제외한 모든 제품 및 서비스 국제표준을 논의하고 제정한다. 1947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2만4000여종의 국제표준을 제정했다. 앞으로 길게는 3년여 동안 ISO 내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은 높아지고 활동 영역은 더 넓어질 것이다.
중국과의 표준 경쟁에서 밀리지 않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도 의미 있는 성과다. 그동안 ISO 회장직을 수행한 아시아 국가는 두 번씩 뽑힌 일본과 인도를 비롯해 중국·싱가포르뿐이다. 이번에 우리나라가 포함됨으로써 국제표준화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국제적 공감대를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중국은 2000년대 들어 ISO를 비롯한 국제표준화기구에서 그 영향력을 키우는 데 전력을 다해 왔다. 현재 IEC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가운데 ITU 사무총장직도 중국인이 맡고 있다. 중국이 표준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닫고 국제무대에서 물량 공세를 펼친 것이 주효했다. 분담금과 정회원 수, 기술위원회 간사국 수 등 국가별 활동 순위에서 중국은 독일·미국과 함께 세 손가락 안에 든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이제 한국인 ISO 회장 선출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차분히 분석하고 대비해야 한다. 우선 4차 산업혁명과 산업 간 융·복합으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미래 산업 표준화 활동에 국가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적극 참여해야 한다. 디지털 대전환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신기술 및 신산업 주도권은 결국 표준을 누가 선점하느냐에 따라 판가름날 것이다. 국내 기술 개발과 동시에 국제표준화 활동을 병행하면서 미래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 또 개발도상국에 우리 노하우를 전수, 기술 표준 동맹을 확대하는 것도 절실하다.
마지막으로 엔지니어들의 국제표준화 활동 참여를 확대하는 마중물이 돼야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국제표준화 활동은 정부와 학계 중심으로 이뤄졌다. 정작 기술을 개발하고 표준을 마련해야 하는 주체이자 당사자인 기업 엔지니어 활동은 일본, 중국 등 경쟁국에 비해 저조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그 배경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최고경영자(CEO)의 관심과 전폭적인 지지가 부족한 것도 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국제표준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의 노하우와 인적 네트워크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같은 지난한 과정에 엔지니어들이 꾸준히 참여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조 대표의 ISO 회장 출마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다는 점은 그래서 반갑다. 이제 자동차를 비롯해 전 산업군에서 국제표준화에 더욱 활발하게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제표준화를 외면하면서 해외 시장을 공략하고 신산업을 창출하자는 것은 공허한 말일 뿐이다.
양종석 산업에너지환경부 데스크 js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