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탈 중국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인도산 아이폰'과 '태국산 맥북'으로 현실이 됐다. 과거 애플의 중국 생산 비중은 95%를 웃돌았다. 생산이 중국에 집중된 건 애플에는 '아킬레스건'이었다. 이제야 중국 생산과 다른 지역 생산 분리에 나섰다. 인도 생산 비중을 크게 높인다는 계획도 알려졌다. 애플이 미국과 중국의 정치적 리스크가 심화하는 상황을 고려해 비용부담을 떠안고라도 생산 전략 변화를 추구한다는 뉴스에 세계인의 이목이 쏠렸다.
애플의 전략 변화는 연쇄적으로 글로벌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계의 질서 전환을 부추긴다. 애플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마트폰, PC, IT 기기를 생산하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중국 생산 비중을 줄였을 때 태국, 인도 등 제3국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력 또한 엄청나다. 아이폰에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한국·미국·대만 업계도 애플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애플이 중국 비중을 줄이면 한국 수혜로 이어질까.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최근 공개된 한 자료가 눈길을 끈다. 일본 스마트폰 분석 전문업체가 아이폰14를 분해해서 추산한 원가 자료에 따르면 과거 1위이던 한국 업체의 비중은 미국에 이어 2위로 내려앉았다.
제일 비싼 부품인 카메라와 디스플레이의 80~90%가 한국산인데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들여다보면 미국 셈법을 대략 읽을 수 있다. 한국산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면서 카메라나 디스플레이 가격 상승분을 상쇄했다. 미국산 통신, 전력 등 비메모리 반도체가 눈에 띄게 약진했다. 애플의 비밀스러운 공급망관리(SCM)를 모두 들여다볼 순 없지만 일부 부품을 미국산으로 대체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이 전략적으로 자국 부품의 생산을 독려하면서 애플에 부품을 납품해 온 여러 업체가 미국 공장을 확대한다는 최근의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도 관심을 끈다.
국내 소부장 업계는 변화에 예의주시해야 한다. 애플은 여전히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부품에 크게 의존한다. 그러나 동시에 자국 부품 비중을 늘리려는 노력도 엄청나다. 현상 유지를 위해 손을 놓고 있다간 우리 소부장 업계의 공급 비중은 수년 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생산 전략의 다변화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국내 일부 소부장 업계가 북미 생산을 확대할 채비를 하고 있다. 비용 상승을 감안하고라도 선제 대응을 하기 위해서다. 현재 자동차와 배터리에 집중된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 소부장 업계는 대내외적 상황과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기존 질서는 이미 붕괴하고 있다. 누가 어떻게 빨리 대응하느냐에 따라 미래 먹거리를 챙길 수 있다. 마침 정부에서도 100대 소부장 핵심 전략 기술을 150대로 확대해서 육성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숨 가쁘게 변화하는 글로벌 공급망 체계 속에서 한국 소부장 업계가 지속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지원하는 분위기 조성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