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4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닥터나우를 찾아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약속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진료가 폭발적으로 확산하고 유망 기업이 생겨났으나 팬데믹 상황에 한시 허용된 서비스인 만큼 언제 다시 금지될지 몰라서다. 장예찬 인수위 청년소통TF 단장은 “스타트업이 갑작스러운 규제로 하루아침에 사업을 못 하게 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후 비대면 진료는 5월 발표된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에 포함됐다. “의료 취약지 등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상시 관리가 필요한 환자에 일차 의료 중심의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제도화까지 별 진전이 보이지 않는다.
인수위는 국정과제로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 신설도 약속했다. 당시 인수위원이던 백경란 현 질병관리청장은 발표에서 “혁신위원회를 신설해 기초연구, 병원, 기업이 함께 협력하고 관련 부처가 함께 지혜를 모을 수 있도록 거버넌스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제약바이오를 제2의 반도체로 육성하겠다는 당선인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대선 동안 제약바이오 강국 실현을 위한 컨트롤타워로 국무총리 직속 혁신위 설치를 공약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혁신위 설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물 건너간 상황으로 받아들여진다. 지난달 말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위원회 설치에 대해 “관계부처와 적극 협의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는 신속 설치를 주문한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답변이었다. 게다가 정부는 내년 긴축 재정과 정부위원회 통폐합을 천명한 상황이어서 위원회를 만들 가능성이 낮고, 생겨도 권한 없는 구색 맞추기 위원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 정부에 많은 과제가 쌓여서일까.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레고랜드 발 채권시장 쇼크, 수출 감소 등 출범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숙제가 쏟아지고 있다는 건 일견 이해된다. 그러나 바이오, 의료 분야 동향도 심상치 않다. 미국은 9월 '국가 바이오 기술 및 바이오 제조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미국에서 발명되고 개발된 바이오 기술 기반 혁신 제품과 서비스가 미국 내에서 생산하는 것이 골자로, 반도체·전기차·배터리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움직임과 같다. 중국도 올해 5월 2035년까지 글로벌 선도 기업 육성을 담은 '바이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웠다. 중국이 경제개발 계획에 바이오를 포함한 것은 처음이다. 최근 한국원격의료학회 주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는 일본, 베트남,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에서 비대면 진료가 빠르게 확산하는 사례가 발표됐다.
차이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우리 정부는 계획만 있고 다른 국가는 실행에 나선다는 데 있다. 산업연구원은 미국 바이오 행정명령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미국이 혁신 경제 분야에서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해 대통령실 중심 강력한 거버넌스 체계를 발동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이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정책을 조정·조율하는 '한국 바이오경제 총괄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컨트롤타워 필요성, 즉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 설치 얘기다. 지켜지지 않은 약속은 공약(空約)이고 실천 없는 계획에 성과가 따를 리 없다. 남는 건 뒤처지는 것뿐이다.
윤건일 벤처바이오부 데스크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