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에너지 산업은 탈탄소화·전기화·분산화가 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7월 '실현가능하고 합리적인 에너지 믹스의 재정립'을 위한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2030년 전체 발전 중 원전 비중을 30% 이상 유지하는 방향으로 에너지믹스를 재정립하고 재생에너지 계통안정화 방안 마련,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제정 등 전력망 구축 계획으로 전력망을 효율적으로 재설계한다. 분산에너지 관리와 확산 체계 구축도 추진하기로 했다. 자원안보 강화, 에너지 수요 효율화 추진과 전력시장 구조 개선도 내세웠다.
이런 에너지 정책 기조 아래 향후 전원구성 방향은 원자력발전을 적극 활용하면서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변동성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저장장치 등을 확보해 똑똑하고 유연한 계통 운영기반을 구축하는 것도 매주 중요하다.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전체 전력 사용량의 39%를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지역에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전력을 생산하는 대부분 발전시설은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위치했다. 대기오염 문제와 관련한 환경규제 강화로 발전소 건설부지를 확보하기가 더욱 어려워지면서 부득이하게 기존 발전소 부지를 확장하고, 발전단지가 대형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대규모 발전단지에서 만든 전력을 수도권 지역으로 보내기 위해 대규모 송전설비가 추가로 필요하다. 송전설비 건설 과정에서 지역사회와 갈등과 함께 많은 사회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태양광·풍력발전 등 재생에너지가 많이 보급되지만 재생에너지는 햇빛과 바람 등 기후 요인에 따라 발전량 변화가 커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어렵다. 재생에너지가 증가하면 할수록 발전량 변동성에 대응하는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설비와 함께 송·배전 전력인프라도 확대해야 한다.
이와 같은 문제 해결책으로 분산에너지가 중요하게 고려되고 있다. 분산에너지는 전력 사용지역 인근에 설치된 일정 규모 이하 발전설비인 '분산형 전원(Dispersed Generation)'과 발전량의 변화가 큰 신재생발전의 변동성을 보완할 수 있는 계통안정화 기능을 수행하는 ESS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배전선로, 송전선로 건설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기사업법 시행규칙에서는 분산형 전원을 40㎿ 이하 소규모 발전설비, 500㎿ 이하의 집단에너지·구역전기·자가용 발전설비로 정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확대 등 영향으로 분산형 전원 비중은 내년 14.4%, 2030년에는 20.4%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정부는 중앙 집중형 에너지 시스템에서 분산에너지 시스템으로 전환하기 위해 전력 인프라·제도 등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6월 '분산에너지 활성화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이런 추진전략이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첫째, 분산에너지가 확산되도록 전력계통 관리·수용능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신재생발전 출력 등 실시간 운전현황 감시체계와 같은 인프라 구축과 재생에너지의 출력 변동성을 완화하기 위한 ESS 확충, 섹터커플링 기술개발·상용화 등 신규 유연성 자원을 확대해야 한다. 섹터커플링 기술은 변동성이 있는 재생에너지 전력을 열·수소 등 다른 형태 에너지로 변환해 사용하고, 난방·수송·발전 등 에너지 공급 부문 간에 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재생에너지 보급이 상대적으로 빠른 제주지역에서는 2015년부터 풍력발전 출력제어 현상이 발생했다. 출력제어 횟수도 지속 증가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출력 변동성을 감시하고 관리하는 신재생 관제시스템을 우선 도입해 운영하고 있으며 신재생 예측시스템 고도화 등 재생에너지로 인한 변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 대응하고 있다.
둘째, 에너지 생산과 소비 분산화를 유도하는 보상체계를 마련하고 대책이 필요하다. 전력 사용지역 인근에 위치한 분산에너지가 확대되면, 송·배전망 투자가 최소화되고 재생에너지 이용이 늘어나게 되면 환경 편익도 증가한다. 이런 분산에너지에 대한 편익을 반영해 보상을 확대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분산에너지에 적합한 전력시장 제도도 만들어야 한다. 태양광·풍력 등 출력변동이 큰 재생에너지가 증가해 계통 운영 불안정성이 증가하고 있다. 전력시장 제도로 이를 관리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정부와 전력거래소는 재생에너지 변동성에 대응하는 시장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를 중앙급전 발전기처럼 입찰에 참여하고, 출력제어를 받도록 하는 재생에너지 입찰제도도 도입할 계획이다. 신재생에너지 변동성 등 실시간 수급 여건을 즉각 반영해 대응할 수 있는 실시간 전력시장도 추진한다. 내년 하반기에 제주지역에 시범 도입한 후 2025년에 전국으로 확대해 적용한다. 분산에너지에 적합한 전력시장 제도로 전환해 분산에너지가 확대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새 수익창출이 가능한 다양한 인센티브 제도를 제공해 줄 필요가 있다.
끝으로 분산에너지 시스템으로 전환을 위한 법·제도도 마련해야 한다. 한 지역에서 전력 생산과 소비가 이뤄지도록 지역 관리체계인 배전망 운영자, 이를 감독하기 위한 전력계통 감독체계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또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송·배전망 이용요금제를 개발해야 하며, 분산에너지 발전원을 이용해 지역별로 다양한 신규 혁신제도를 실증하는 분산에너지 특구제도를 도입하는 등 활성화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이런 법·제도 기반을 담고 있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은 지난해 7월 제출돼 국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정부는 최근 탄소중립 녹생성장 기술혁신 전략을 마련해 탄소중립을 향한 발걸음을 차근차근 내딛고 있다. 탄소중립과 에너지전환을 위해서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분산에너지 활성화는 필수 요소다. 이를 위한 새 법·제도와 전력시장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분산에너지로 전환을 위한 첫 발자국으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 여야간 합의를 거쳐 조속히 통과되길 바란다.
<필자 소개>강승진 한국공학대 교수(전 전기위원회 위원장)
우리나라 대표 전력 전문가로 꼽힌다.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이후 프랑스 그르노블 2대학에서 응용경제학도 전공했다. 1983년 에너지경제연구원에 입사한 후 19년 간 연구위원으로 일했다. 2002년부터는 한국산업기술대(현 한국공학대)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한국자원경제학회장과 전력거래소 비용평가위원회, 녹색성장위원회 등에서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을 설계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7·8·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요관리 분과위원, 전기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하면서 우리나라 전력정책에 깊이 관여했다.
강승진 한국공학대 교수(전 전기위원회 위원장) sjkang@tu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