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는 불과 5년 전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팬데믹 영향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기술패권 경쟁의 심화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이어졌다. 전쟁을 비롯한 지정학적 변화가 에너지 위기를 초래했고,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켰다. 극단적인 이상 기후는 기후 변화 영향을 가시화했으며, 탄소중립이 시대적 소명으로 강조되고 있다. 인공지능, 5G와 같은 디지털 기술은 경제와 사회 전반에 걸쳐 우리 삶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 대전환 시기를 맞아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기후 변화, 팬데믹과 같은 세계적 문제와 저출생고령화와 같은 국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과학기술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과학기술 혁신을 기반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재설계하는 국가적 대책 마련이 시급한 때다.
지난 14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에서 확정된 '제5차 과학기술기본계획(2023~2027)'은 이 같은 소임을 맡아 앞으로 5년 동안의 과학기술 발전 목표와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할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기본계획의 주요 방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선택과 집중을 통해 국가 연구개발의 전략성을 강화한다. 둘째 민간 중심의 과학기술 혁신 생태계를 조성한다. 셋째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탄소중립, 디지털 전환 등 국가가 당면한 현안을 해결한다. 앞으로 5년 동안의 40여개 부처청이 추진하는 과학기술정책 근간이 마련된 것이다.
'제5차 과학기술 기본계획'의 중요성은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대내외 여건을 고려할 때 앞으로 과학기술이 갖는 가치가 무궁무진하다는 점이다. 최근 미국과 일본은 각각 '반도체와 과학법'(8월), '경제안전 보장추진법'(5월)을 제정해 전략기술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대폭 강화했다. 기술이 경제적 가치를 넘어 외교·안보의 핵심 요소로 대두됨에 따라 기술이 앞으로 국가 간 경쟁의 지렛대가 된다는 인식에서 국가 차원의 전략을 앞다퉈 구체화하는 것이다. 일상에서도 과학기술의 중요성은 높아지고 있다. 올여름 세계 각국이 경험한 기록적인 폭우·폭염·가뭄 등 이상기후와 팬데믹은 탄소중립 기술, 첨단 바이오 기술의 가치를 되새기게 했다. 국가 과학기술 정책의 '마스터플랜'인 과학기술기본계획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점인 것이다.
두 번째로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을 아우르는 최상위 법정 계획으로써의 역할이다. '제5차 과학기술기본계획'은 특히 범부처 과학기술 관련 계획을 연계하고 일관성을 확보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각 부처는 과학기술기본계획을 바탕으로 63개의 분야별 중장기 계획을 수립, 이행한다. 예를 들어 기본계획의 '미래위험 대응' 과제는 앞으로 5년 동안의 주요 방향으로 재난 피해 정도를 저감할 첨단기술 고도화, 현장 적용 확대를 제시하였다. 행정안전부는 이를 반영하여 '재난과 안전관리 기술개발 종합계획(2023~2027)'을 수립하고 세부적인 기술개발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처럼 과학기술에 관련된 40여개 부·처·청, 60여개의 부처별 계획이 기본계획과 정합성을 갖고 마련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관리할 예정이다.
'제5차 과학기술기본계획'이 기존 계획과 차별화되는 가장 큰 특징은 기존 계획이 과학기술 R&D 시스템 개선과 기술개발 중심으로 수립되었다면 제5차 기본계획은 문제 해결을 위한 과학기술로 역할을 확장했다는 점이다. 과학기술계에 종사하는 연구자는 물론 학생·청년과 기업인을 포함한 모든 국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과학기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어떤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그 결과를 기본계획의 과제와 주요 목표로 삼았다.
연구자들을 위해 한 분야에서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신설되고, 연구에 필요한 데이터를 쉽게 검색하고 이용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이와 같은 노력을 통해 연구자의 역량 강화를 돕고, 국제협력을 활성화해서 우리나라의 피인용 상위 1% 논문 점유율을 높여 나갈 것이다.
학생과 청년이 디지털 역량을 개발하고 신산업·신기술 분야의 핵심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대학과 공공연구소에서 기초연구를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한편 연구성과의 실용화 지원을 확대할 예정이다. 또 실험실 연구 성과 발굴과 창업, 성장을 연계 지원하여 유니콘 기업이 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민간 기업의 수요가 국가R&D 전략에 적기 반영될 수 있도록 일회적이고 단편적인 의견 수렴이 아니라 상시적인 분야별 R&D 협의체를 운영, 민·관 협력을 한층 강화한다.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현재 역량에 따라 맞춤형 지원을 받게 될 것이다. 또 최근 감소세인 민간 연구개발 투자 유인을 위해 조세 및 규제 완화 등 다양한 정책 활용을 범부처 차원에서 논의하고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이외에도 최근 인구감소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우수한 연구 인력과 신기술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한다. 국가적 현안 해결 관점에서는 탄소중립 실현에서부터 디지털전환 촉진, 국민건강 증진, 재난 대응, 공급망 선점, 과학기술 강군 육성, 우주 등 과학 영토 확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과학기술의 역할을 제시했다.
1962년에 수립된 제1차 기술진흥 5개년 계획 이후 우리나라는 오늘날 세계 경제 규모 10위의 국가로 성장하였다. 과학기술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동안의 성장을 발판으로 해서 한층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의 질적 성장이 절실하다. '제5차 과학기술기본계획'은 이러한 성장의 구심점 역할을 맡아 행복한 국민, 역동적 경제, 강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려 나갈 것이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이종호 장관은 반도체 분야 세계적 석학으로, 5월 윤석열 정부 첫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경북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 전자공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마이크로시스템 기술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원광대·경북대 교수를 거쳐 2009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했다. 2016년에는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 석학회원에 선임됐으며, 2018년부터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을 지냈다. 2002년 세계 최초로 3차원(3D) '벌크 핀펫'(Bulk FinFET)을 개발, 반도체 소자기술의 새 장을 열었다. 이 장관은 이와 같은 능력과 지식을 바탕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기술(ICT) 기반 미래 먹거리 찾기에 주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