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제5차 국가 과학기술 기본 계획' 성공 조건

[ET시론]'제5차 국가 과학기술 기본 계획' 성공 조건

2023~2027년까지 '제5차 국가 과학기술 기본계획'이 확정 발표됐다. 국가 안보, 경제, 통상·외교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기술패권주의 시대 과학기술이기에 5년 계획에 대해 방향성과 전략, 세부 계획까지 국민 관심이 지대하다. 대한민국이 이동통신, 반도체, 이차전지, 조선, 자동차, 석유 화학 등 여러 분야에서 글로벌 선도 산업 국가로 도약한 데는 지난 20년간 '4차 국가 과학기술 기본계획', 1996년 10조원에서 2022년 100조원으로 증가해 GDP 대비 세계 5위를 차지한 '과학기술 민관 연구개발(R&D) 투자' 등 '시의적절한 과감한 실행'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5차 국가 과학기술 기본계획' 주요 내용과 방향을 살펴보자. 5차 기본계획은 과학기술 발전에 관한 중·장기 정책목표, 기본방향을 제시하는 최상위 계획이다. 윤 정부 과학기술 관련 국정과제 29개를 반영했다. '과학기술 혁신이 선도하는 담대한 미래'를 비전으로 △국가 연구개발(R&D) 전략성 강화 △민간 중심 과학기술 혁신생태계 조성 △과학기술 기반 국가적 현안 해결을 주요 방향으로 잡았다.

국가 R&D 전략상 기획에서 투자까지 모든 단계에 기업 수요를 반영하도록 민·관 협의체를 상시 운영한다. 기업부설연구소 혁신역량별 사업 지원을 비롯해 기술 혁신성을 중심으로 기업 R&D 지원 체계를 고도화하고, 민간 중심의 과학기술 혁신생태계를 조성한다. 특히 자생적 지역 혁신을 위해 지역 주도로 R&D 예산·정책·기획을 수립할 수 있게 지역 과학기술 전담 기관을 17개 시·도로 확대한다. 중앙-지역 간 정책·예산 연계·조정을 위해 지방 과학기술전략회의 신설 내용도 담겼다.

요약하면 선택과 집중에 따라 기존 부처별 R&D가 아닌 임무 중심 R&D, 기술 성숙 주기가 짧아짐에 따라 기술 개발과 동시에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한 민간 중심 R&D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글로벌 이슈인 탄소중립, 우리나라 강점인 제조중심 산업에서 국민 생활과 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디지털화와 디지털전환 등 국민 일상생활과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오래된 미래' 문제 해결로 그 방향성을 잘 설정한 것으로 평가된다. 방향에 따른 3대 전략, 17개 추진과제, 50개 세부 중점 기술 등도 구체적으로 담아냈다. 5년 내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전략과 계획을 잘 짜인 비전으로 제시했기에 과학기술 혁신을 선도하는 대한민국의 담대한 미래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기본계획이 나왔으니 국가 전략기술 육성을 '누가'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를 고민할 차례다. 국가 전략기술은 공급망과 통상 안정, 신산업 육성, 외교 안보를 고려해 혁신선도, 미래도전, 필수기반 3개 분야에서 12개 기술을 도출했다.

혁신선도 분야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첨단 모빌리티, 차세대 원자력으로 민간 주도 초격차 기술 개발 및 핵심부품 의존도 완화를 목표로 한다. 미래도전 분야는 첨단 바이오, 우주항공·해양, 수소, 사이버 보안으로 민·관협업 시장 스케일업과 대체 불가 원천기술 확보에 방점을 찍었다. 필수기반 분야는 인공지능, 첨단 로봇제조, 차세대 통신, 양자다. 공공주도로 핵심 원천기술을 고도화하고 다른 산업과 융합 활용에 민관 역량을 결집한다. 12개 국가 전략기술 육성을 '누가' '어떻게'는 5년 안에 현장에 투입할 '시의적절한 현장 인재'와 '이를 확보할 양성 방안'을 말한다.

'누가'의 주체는 기술패권주의 시대에 국가 안보와 외교, 경제 경쟁력 향상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인재다. '혁신선도' '미래도전' '필수기반' 12개 전략기술을 이끌어 나갈 '인력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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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가 나와도 이를 '누가'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다. 울산을 예로 들어보자. 자동차, 선박, 석유화학으로 우리나라 전체 제조 생산액의 12.4%를 차지하는 전국 2위 제조산업 도시다. 동시에 인공지능(AI), 빅데이터, 5G·6G 등 산업혁신 기술을 '누가 어떻게 도입하고 적용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인력난이 시급한 반도체, AI 분야의 경우 정부 지원 계약학과를 인재를 양성하고 확보하는 루트로 활용한다. 하지만 대기업조차 2~4년을 기다려야 하고, 제조혁신이 필요한 중소·중견 기업은 당장 현장에 투입할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 해결할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해본다. 하나는 산업 현장에 신기술을 신속하게 접목할 방안으로 현장 인력의 디지털전환을 위한 '문제 해결형 재교육'과 '산업체 주도 현장실습'이다. '문제 해결형 재교육'은 신기술 교육뿐만 아니라 현장의 문제를 과제로 만들어 재직자와 교육자가 직접 해결하는 현장 기반 맞춤형 실무 교육이다. UNIST는 현재 'AI 노바투스'라는 문제 해결 기반 산업체 인력 재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울산·경남지역 중소·중견기업 현장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솔루션을 개발해 현장에 빠르게 적용하면서 신기술 도입과 매출 증가 성과를 동시에 거두고 있다.

'산업체 주도 현장 실습'은 현장 적용 신기술 습득 인력 양성 방안이다. '산업체 주도'는 기업이 실제 현장 중심의 실습프로그램을 수립하는데 주도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 대학 교육은 기초 이론 교육과 기초·응용 실험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기술을 적용하거나 적용 가능한 현장은 기업에 있고, 따라서 현장에 필요한 실습프로그램을 잘 만들 수 있는 곳도 기업이다.

그동안 산학협력 현장실습은 학생이 산업 현장을 이해하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신기술을 현장에 적용한 대기업 및 중견 기업이 현장 실습프로그램 개발을 주도하고, 현장 실습에 재직자 멘토를 붙인 6개월 이상의 현장 실습프로그램을 산학협력으로 운영한다면 현장에 즉시 투입 가능한 인재를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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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는 '기술성숙도(TRL) 전주기와 통합 시스템 수준(IRL)'을 고려한 인력 양성과 이를 담아낼 혁신 주체 확보다. TRL 전주기와 IRL에 필요한 인력은 다양하다. 결집한 특화 분야를 선도할 우수 개발인력, 이러한 인력 양성에 필요한 기자재 등을 다루는 지원 전문인력, 개발 기술을 사업화로 이끄는 인력, 사업화 스케일업 인력, 사업화에 걸맞은 민간 투자를 끌어내는 인력 등이다.

동시에 신기술 개발인력 풀을 모으고 이들이 활동하는데 필요한 장비, 실증 사업화를 실행할 공간, 기술을 이전할 산업체 등을 엮을 수 있는 신기술 혁신 주체가 뒷받침돼야 한다. 신기술 혁신 주체는 현실적으로 지역 혁신 주체와 다르지 않고, 지역에 다양한 산업과 인력이 넓게 분포해 있다는 점에서 지역산업 발전도 결국은 '누가' '어떻게'에 따라 좌우된다. 지역 인재 양성과 지역 산업 발전에 필요한 첨단 기술 개발이 국가 전략기술 선도 인재 양성, 퍼스트 무버 기술 확보와 직결되는 이유다.

'제5차 국가 과학기술 기본계획'과 핵심 12개 국가전략기술 수행에 가장 적합한 주체는 결국 지역 산업에 특화된 개발 인력집단, 장비와 장비 운용 인력, 기술이전 개발인력, 실증 인프라, 민간투자 기관이고, 이를 모두 포용할 수 있는 '산업혁신 통합 플랫폼'이라 하겠다.

'산업혁신 통합 플랫폼'은 우수 인력풀을 지닌 대학 역량을 한곳에 모을 수 있다. 지역에 거점을 두고 우수 인력과 장비를 갖춘 4대 과기원은 물론 정부 출연연 분소 등의 활용도 가능하다. 각 지역에서 진행하고 있는 32개 '규제자유특구'와 19개 '연구개발특구'도 신기술 실증 주체로 활용할 수 있다. 지역산업 발전과 신기술 접목을 위해서는 지역 산업체의 적극적인 혁신 주체로의 참여와 공동 연구도 동반돼야 한다.

'제5차 국가 과학기술 기본계획'의 성공적 이행과 성과 창출을 위해서는 '시의적절한 인력 확보와 양성 방안'을 우선 마련하고, '빨라진 기술 성숙도 주기와 통합 시스템 수준을 고려한 다양한 인재 양성'을 통해 '누가' '어떻게'를 우선 해결해야 할 것이다. 지역 혁신 주체를 모두 아우른 '산업혁신 플랫폼'이 핵심 방안이 될 수 있다. 글로벌 기술패권주의 시대에 우리나라 안보와 경제, 외교를 위해 '제5차 국가 과학기술 기본계획'이 '오래된 미래'를 넘어 '담대한 미래'를 향한 토대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재용 UNIST 교학연구 부총장 jailee35@unist.ac.kr

〈필자〉 이재용 부총장= 연세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아이오와대에서 컴퓨터공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7년 포항공대 전산학과 교수를 시작으로 연세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와 학부장, 공과대학장, 산학협력단장, 교학부총장을 지냈다. 미래창조과학부 기가코리아재단 이사장, 한국통신학회장, 한국공학한림원 미래인재양성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과학기술계 리더다. 2020년 3월부터 UNIST 교학연구 부총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