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요한 소재 수출을 규제했을 때 당시 산업 일각에선 안도의 한숨이 있었다. 일본의 갑작스러운 '소재 무기화'에 한국 기업에 비상이 걸린 건 사실이었지만 생산을 중단시킬 정도의 '치명적 공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디스플레이 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2019년 당시 일본이 파인메탈마스크(FMM)를 끊었으면 국내 OLED 공장은 정말 멈췄을 것”이라며 “메모리나 OLED를 정말 못 만들게 되면 전 세계적으로 파장이 워낙 커 일본도 칼을 뽑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FMM은 OLED 증착 공정 핵심 소재로 일본 다이니폰프린팅(DNP)이 100% 공급한다.
일본 수출 규제로 첨단 산업 공급망의 중요성을 각성한 지 만 3년이 지났다. 우리 정부와 산업계는 전국민적 관심 속에 힘을 모아 핵심 소재 다변화와 국산화를 추진했다. 성과는 적지 않았다. 일본이 규제한 3대 품목 △불화수소 △불화폴리이미드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PR)는 다변화·국산화를 이뤄냈다. 가장 개발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EUV PR도 실제 양산 공정에 적용됐다.
그러나 이게 끝일까.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는 국가 핵심 전략산업으로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미국, 중국, 유럽 등 강대국들은 자국 중심의 첨단 산업 재편을 추진 중이다.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는 한편 자국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려 해 언제든 다시 제2, 제3의 수출규제에 직면할 수 있다.
전자신문은 이에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 3대 분야를 중심으로 해외 의존도가 100%에 가까운 소재·부품들을 스톤파트너스 등 전문가들과 조사했다. 공급망을 진단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대외 널리 알려진 것과 영업비밀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의존도 높은 소재를 중심으로 추렸다. 그럼에도 품목은 부지기수였다.
◇반도체
반도체 패키징 소재는 덕산하이메탈, 두산, 삼성SDI, 해성디에스 등 국내 소재·부품 기업이 포진해있다. 그러나 일부 품목 상용화에 그쳐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제품 포트폴리오 확대가 시급하다. 특히 일본 의존도가 높아 국가 간 외교 갈등 시 2019년 수출 규제와 같은 공급망 위기가 재현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버퍼 코트·재배선 재료는 메모리·로직 등 첨단 반도체 패키징에 쓰인다. 국내에서는 팬인웨이퍼레벨패키징(FI-WLP)용으로 많이 활용한다. 시장 공급 1위 업체는 HD마이크로시스템즈다. 일본 쇼와덴코와 미국 듀폰이 50대 50으로 설립한 합작회사다. TSMC가 패키징 주도권을 쥐게 된 팻아웃웨이퍼레벨패키징(FO-WLP)는 일본 아사히카세이가 선점했다.
신타링 페이스트는 내열성과 방열성이 특징인 반도체 다이 부착 재료다. 솔더를 대체하는 재료로 적용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특히 자동차 전동화에 따라 전력 반도체에 많이 사용된다. 인버터 모듈 등에 쓰이는 가압 타입과 전원계 집적회로(IC), 고출력 LED 등에 활용하는 무가압 타입으로 나뉜다.
가압 형태 신타링 페이스트는 사실상 미국 맥더미드가 수급권을 갖고 있다. 세계 시장 70%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최근 생산 능력을 키우고 있어 시장 주도권을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무가압 타입은 교세라, 맥더미드, 다나카귀금속공업 등 미국과 일본 업체 수입에 의존한다.
층간절연필름도 수급난에 겪는 대표 품목이다. 반도체 패키지용 절연층에 사용되는 소재다.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이 최근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플립칩-볼그리드어레이(FC-BGA)에 주로 활용된다. 층간절연필름 소재 공급이 어려울 경우 국내 기업이 집중하는 FC-BGA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층간절연필름 연평균 성장률은 13%로 전망된다.
층간절연필름은 사실상 일본 아지노모토 파인테크놀로지가 독점하고 있다. 90% 후반대의 높은 점유율을 확보했다. 소량 공급 중인 세키스이화학공업도 일본업체다. JSR, 쇼와덴코, 스미토모 등 층간절연필름 개발에 도전하는 기업들도 모두 일본 기업인 것을 고려하면 수입 의존도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구리 도금액은 3차원(3D) 적층 반도체 구조를 위한 실리콘관통전극(TSV)용으로 쓰인다. 독일 아토텍과 미국 듀폰·맥더미드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디스플레이도 핵심 소재 자급률이 낮았다.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에 따르면 소재, 부품을 국산화율은 약 60% 수준이다. 일본과 미국, 유럽 기업 소재 수급 의존도가 100%에 이르는 품목은 5개 이상이다. 포토레지스트 등 절대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소재도 다수다. 해당 품목은 공급망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당장 생산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파인메탈마스크(FMM)는 일본 DNP에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FMM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발광물질을 디스플레이 화소 영역에만 증착할 수 있게 하는 금속 판이다. 일부 국내 기업이 국산화에 성공했지만 공급량은 미미하다. 일본 DNP가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에 지속적으로 가격 인상을 요구하는 품목으로도 알려져 있다.
산화물반도체 기반 이그조(IGZO)는 중국기업 바이탈 머티리얼즈로부터 전량 공급받는다. IGZO란 인듐(In), 갈륨(Ga), 아연(Zn), 산화물(O)로 만든 디스플레이 소재다. 디스플레이 박막트렌지스터(TFT) 활성층에 사용된다.
바이탈 머티리얼즈는 1995년 설립된 희귀금속 기반 첨단 소재 전문 기업이다. 중국에서 핵심 소재를 생산한다. 과거 바이탈 머티리얼즈는 삼성디스플레이가 미국 코닝과 설립한 합작사 삼성코닝어드밴스드글라스 구미사업장을 인수한 바 있다.
폴리이미드는 일본 도레이가 100% 공급한다. 핵심 소재를 일본에서 생산한다. 폴리이미드는 디스플레이 제조 시 기판이나 커버 윈도에 활용되는 핵심 소재다. 열 안정성이 높은 고분자 물질이다. 디스플레이는 기판은 고온 제조 공정을 견뎌야 하는데 폴리이미드는 이 특성을 갖췄다. 국내 중견 기업 등이 폴리이미드 국산화에 나섰지만 생산 현장에서는 도레이가 압도적이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디스플레이는 반도체와 비교하면 시장 규모가 작고 성장세가 더딘 만큼 소재 국산화에 뛰어드는 기업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해외 기업과 합작법인유치, 글로벌 거래선 다변화 등을 추진해 공급 안정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배터리
국내 배터리에 해외 소재·광물 의존도가 커져 위기를 피하기 어렵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한국 배터리 수요가 몰리지만 일본 소재, 중국 광물 없이는 배터리를 생산할수 없기 때문이다. 배터리 공급망 대응력을 키워야하는 배경이다.
배터리 4대 소재 중 하나인 전해액은 원재료가 리튬염이다. 전해액 원재료인 리튬염은 중국에서 대부분 수입한다. 중국 틴츠, 캡캠에서 수입하는 규모가 2조원에 달한다. 리튬염을 현지에서 직접 생산한 중국이 가격 결정권을 쥐고 있다는 의미다.
전해액 성능을 좌우하는 첨가제는 일본에서 100% 수입하고 있다. LiPO2F2, WCA2, LiFSI, SN, PS 등이 대표적이다. 미쓰비시와 센트럴글래스 등 일본 기업이 원천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센트럴 글래스 경우 전해액 공장은 국내에 뒀지만 첨가제는 일본에서만 생산한다. 수출 규제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 품목이다.
음극재용 단일벽 탄소나노튜브(SWCNT)는 러시아 옥시알에서 전량 수입한다. SWCNT는 실리콘 음극재를 감싸 부피 팽창을 제어한다. 실리콘 음극재는 배터리 충전 성능을 올리는 실리콘을 넣으면서 부피 팽창의 안전성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미국의 중국산 배터리 소재 제품 배제로 어려움을 겪은바 있다. 미국 전기차 확산을 이유로 한국산 배터리 장착 전기차에 중국산 소재 사용 제한했기 때문이다. 배터리 소재 국산화가 시급한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와 기업 노력으로 제품 개발에 속도를 올려야 한다”며 “산업통상자원부 배터리 4대 핵심 소재 개발 수행 과제를 늘리고 국내 배터리사를 수요 기업으로 더욱 많이 참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 김지웅기자 jw0316@etnews.com,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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