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어려운 날이 더 많았죠.”
강득주 제이오 대표는 답했다. 연 1000톤 규모의 탄소나노튜브(CNT) 공장 준공을 앞둔 때였다. 강도가 높고 전기·열 전도도가 우수한 CNT는 수년 전부터 '꿈의 신소재'로 불려 왔지만 국내에서 대량 생산을 위해 화학물질등록평가법을 통과한 업체는 아직 3개사에 불과하다.
이처럼 희소한 CNT를 강 대표는 2003년부터 연구했다. 그 역시도 20년의 긴 여정이 걸릴지 몰랐을 것이다. 제이오가 2003년 CNT 연구를 시작한 것은 당시 산업자원부의 나노융합혁신 제품기술개발사업에 참여하면서부터다. 국가 연구과제를 지속 수행하며 CNT 생산 기술을 고도화했다. 이처럼 당장 경제성이 낮은 미래 핵심 기술 고도화에는 정부 주도의 연구개발(R&D)이 필수다.
수요기업과 제조기업 공급망을 아우르는 국가 R&D 지원으로 극자외선(EUV) 감광액(PR), 불화수소, 불화폴리이미드 등 일본의 수출 규제 품목을 비롯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자립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부장 성장 동력이 예전만 못하다. 지난해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 소재부품기술개발사업 반도체·디스플레이·사업융합 분야 신규 과제 수는 60개를 기록했다. 2021년 신규 과제 156개에 비해 약 60% 줄었다. 신규 과제 예산 역시 210억원으로 전년 1036억원 대비 20% 수준이다. 신규 과제로만 보면 지난해 학계와 연구계 중심으로 무성하던 '소부장 홀대론'이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지난해 소재부품기술개발 사업 전체 예산은 8410억원으로 22% 늘긴 했다. KEIT 관계자 역시 “지난 2년 동안 신규 과제가 워낙 많고 이를 수행하기 위한 계속 과제 예산 비중이 높아 신규 과제 비중이 줄어든 경향은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신규 과제는 57개에서 30개, 디스플레이는 61개에서 23개로 급감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 제조 과정에서 해외 의존도가 높은 소재·부품을 조사한 결과 실리콘웨이퍼, EUV 블랭크마스크, 파인메탈마스크(FMM), 전해액 첨가제 등 적지 않은 품목이 여전히 100% 가까이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당장 내일 공급이 끊기면 대한민국 산업이 멈출 수도 있다는 의미다. 2019년 한-일 무역분쟁 당시 단기 성과에 매몰돼 소부장 자급화의 장기 동력이 힘을 잃은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세계 각국의 기술 주도권 경쟁에 따라 공급망이 곧 전략자산인 시대가 됐다. 소부장에 관심을 높이고, 중장기 관점에서 R&D 지원에 나서야 한다.
송윤섭기자 sys@etnews.com